이집트 ‘6·29식 연착륙’ 플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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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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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야권, 헌법위 구성 합의등 사태 새 국면

은행 업무 재개… 일상 찾아가는 카이로 6일 이집트 카이로은행이 시위 기간에 중단했던 입출금 업무를 재개하자 시민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시위가 5, 6일 연이틀 주춤하며 카이로 시내는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는 여전히 1만여 명의 시위대가 남아 민주주의 정권 수립의 그날까지 시위를 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카이로=로이터 연합뉴스
은행 업무 재개… 일상 찾아가는 카이로 6일 이집트 카이로은행이 시위 기간에 중단했던 입출금 업무를 재개하자 시민들이 돈을 찾기 위해 은행 앞에 길게 늘어서 있다. 시위가 5, 6일 연이틀 주춤하며 카이로 시내는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지만 도심 타흐리르 광장에는 여전히 1만여 명의 시위대가 남아 민주주의 정권 수립의 그날까지 시위를 하겠다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카이로=로이터 연합뉴스

이집트 사태가 6일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며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집트 정부와 야권 연합은 이날 정치협상을 시작하자마자 전격적으로 구체적인 정치개혁 일정을 발표했다. 전날 미국 등 국제사회가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개혁 이행 과정을 지지한다”며 이집트에서의 ‘질서있는 전환(orderly transition)’을 거듭 강조한 지 정확히 하루 만이다.

○ 포괄적 정치개혁 첫걸음


이날 오후 첫 협상 뒤 정부가 발표한 공식 성명에 따르면 정부와 야권은 포괄적인 정치개혁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배제한 평화로운 정권교체에 합의했다. 양측이 구성에 합의한 헌법개정위원회에는 판사들과 일부 정치인이 참여한다.

이들이 3월 첫째 주까지 제출할 헌법 개정안과 법률 개정안에는 반정부세력이 요구하는 구체적인 정치개혁 요구가 명문화돼 담긴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야권 후보의 대선 출마를 사실상 제한했던 헌법 76조가 개정될 가능성이 높다. 76조에 따르면 대선 후보로 나설 정치인은 중앙의회와 지방의회 의원 25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당이 의회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야당 후보의 대선 출마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 정부는 수감된 반체제 정치범들과 언론 및 통신 검열 사례에 대한 탄원을 접수하는 기구를 설립할 방침이다. 양측은 최근 이집트 사태의 해결에 어떤 외부 세력의 개입도 거부한다는 데 합의했다.

이날 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는 야권 세력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무슬림형제단의 행보가 눈에 띈다. 무슬림형제단은 상대적으로 온건한 반정부세력인 ‘4월 6일 운동’그룹과 ‘이집트 변화운동’ 등이 이집트 엘리트 협의체인 ‘25인 위원회’를 구성해 정부와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때도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 무바라크 대통령의 퇴진이 먼저라고 고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집트 정치권과 국제사회의 협상 요구가 거세지면서 6일 오전 전격적으로 방침을 바꿔 협상에 참여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불법단체이기 때문에 정부와 협상해 자신들의 합법화 요구도 관철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협상은 이집트 정부가 불법단체와 공식 협상한 첫 사례가 됐다.

그러나 야권 세력이 모두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한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 측은 여전히 “무바라크 퇴진이 먼저”라며 완강한 자세를 바꾸지 않고 있다. 그는 5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무바라크 대통령과 그의 군사 고문이자 최측근(술레이만 부통령)이 함께 변화를 주도한다는 것은 매우 절망적인 일”이라며 무바라크 즉각 퇴진 운동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5일 “이집트 민주화 과정에서 술레이만 부통령이 주도하는 개혁 이행 과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영국과 독일도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군 출신인 술레이만 부통령은 정보국장으로 재직하며 정보기관과 군부를 장악해왔으며 반정부 시위 초기인 지난달 부통령에 임명됐다.

미국이 술레이만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은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과정 당시 미국의 선택과도 흡사하다. 미국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 대통령에게 군을 동원하는 데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했다. 그리고 군 장성 출신인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가 주도하는 모양새를 갖춘 6·29선언을 통한 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 조치를 적극 지지했다. 강경 유혈진압을 반대하는 동시에 반미 급진좌파의 권력 장악도 방지할 수 있는, 선거를 통한 민주화를 원한 것이다.

이번 이집트 사태에서도 미국의 가장 큰 걱정은 반미 이슬람세력의 집권이다. 이집트는 아랍권에서 미국의 주요한 군수시장이다. 또 이집트 정보부가 미국이 생포한 테러리스트에 대한 강압적 심문을 대신하는 등 친미 이집트 정권은 대테러 전쟁의 주요 거점이었다.

물론 미국의 정책이 무르익는 데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부 특사로 이집트를 방문했던 프랭크 와이즈너 전 이집트 주재 미국대사가 5일 “다음 대선 때까지 무바라크 대통령이 현직을 유지해야 한다”고 발언하자 국무부는 미국 정부의 입장과 무관한 개인적인 견해라고 해명했다.

이 소동은 미 행정부의 정책 담당 실무진 사이에 점진적 민주화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놓고 이견이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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