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만명 넘게 총기사고로 숨지는데…美國은 ‘총기 해방구’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12일 03시 00분



“총기의 자유로운 소유는 애리조나 주의 위대한 전통이다.”

미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애리조나 주 총기난사 사건. 그런데 이 말을 한 장본인은 다름 아닌 가브리엘 기퍼즈 연방 하원의원이었다. 그는 2008년 연방대법원이 총기규제법안의 위헌 여부를 심리할 당시 적극적으로 총기 허용을 지지했다. 숨진 존 롤 연방지방판사 역시 “연방정부가 총기 소유자 신원을 조사하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한 바 있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 모바일판은 10일 “이런 전력이 있다고 이번 사건이 자업자득이란 뜻은 결코 아니다”라며 “용의자 재러드 리 러프너 같은 이에게 총기가 허용되는 현 상황은 되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해마다 총기 사고로 3만 명 이상 목숨을 잃지만 미국은 여전히 총기에 관대한 나라다. 애리조나 주만 해도 21세만 넘으면 누구나 허가 없이 총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겪으며 정신이상자나 위험인물마저 손쉽게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러프너는 2007년 마약소지 혐의로 체포됐으며, 급진사상과 불안한 정신 병력으로 몇 년 전부터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미국 역시 ‘잠재적 범죄자’의 총기 접근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임에 따르면 2007년 버지니아공대 참사 이후 미 행정부는 ‘범죄기록관리시스템(NICS)’을 개편해 집중 관리대상을 대폭 늘렸다. 이후 3년 동안 데이터베이스 추가 명단은 2배 이상 늘어 200여만 명에 이른다.

문제는 연방정부와 달리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주 정부가 많다는 점이다. 사고가 일어난 애리조나 주의 경우 NICS에 등록된 12만1700명이 거주하는데도 막상 주 정부는 4%도 안 되는 4465명만 관리대상에 포함시켰다. 심지어 루이지애나와 네브래스카, 펜실베이니아 주는 단 한 명도 조치하지 않았다. 미 최대 총기소지 반대단체인 ‘브래디 캠페인’의 폴 헬름키 회장은 “이번 사건은 애리조나 주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총기난사 용의자 러프너
총기난사 용의자 러프너
하지만 이번 사건에도 불구하고 총기 허용론자의 태도는 여전하다. ‘애리조나시민방위연맹(ACDL)’의 창립자 찰스 헬러 씨는 “시민들이 더욱 무장해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타임은 “주 정부가 총기 소유를 허용하더라도 범죄 예방에 힘쓸 책임마저 저버려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한편 살인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러프너는 이날 머리를 짧게 깎은 채 피닉스연방법원에 출두했다. 법원은 혐의 인지 여부만 확인한 채 보석 없이 구금을 명령했으며, 다음 공판은 24일 열릴 예정이다. 투손의 애리조나대 의료센터에 입원한 기퍼즈 의원은 현재 손가락을 움직이며 의료진의 지시에 약간씩 반응하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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