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탕… 방콕 곳곳 ‘피의 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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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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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장택동 기자 태국 현지 르포軍 시위지역 실탄발사 허용… “주말 지나 사망자 30명으로”외교부 ‘여행 제한’ 고려

그곳은 미소의 땅이라 불리던 도시가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한 태국 방콕은 사실상 내전 상태에 빠져 죽음의 전쟁터로 변해 있었다.

16일 오후 방콕 수완나폼 국제공항. 여전히 승객들로 붐볐지만 분위기는 눈에 띄게 가라앉아 있었다. 군데군데 지켜선 태국 경찰들은 모두 기관총으로 무장한 채 섬뜩한 눈빛이었다.

평소 교통체증으로 소문난 방콕은 ‘피의 주말’을 겪은 뒤 택시로 시내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국영 에라완 응급구조센터는 “태국 정부와 반정부 시위대(UDD·일명 레드셔츠)가 13∼16일 또다시 유혈충돌로 치달으며 최소 30명이 숨지고 232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15일 시위대가 점거한 도심 쇼핑가 랏차프라송 거리 일대를 ‘실탄발사 허용지역’으로 선포한 태국 정부는 16일 방콕 통행금지령까지 고려 중이다.

랏차프라송 거리에서 한참을 떨어졌는데도 도심은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나가던 한 시민은 “레드셔츠가 폐타이어와 차량을 불태워 낮에도 검은 연기가 시내를 뒤덮었다”고 말했다. 때마침 머리 위로 지나가는 헬리콥터의 저공비행. 위협적인 굉음에 멀리서 간간이 들려오던 총소리마저 묻혔다.
곳곳 교전 - 검은 연기… 방콕 ‘죽음의 전쟁터’로

“시내 학교 개학 1주일 연기”… 泰정부, 봉쇄작전 강행 밝혀
시위대 “지방서 수천명 합류”… 트럭 이용 봉쇄망 뚫기 준비


AFP통신은 “16일 사진기자가 군경 측 발포로 시위대 2명이 총에 맞는 걸 봤다”며 “이날도 1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고 전했다.

태국 군경은 13일 오후부터 시위대 근거지 약 3km²를 둘러싼 채 출입을 금하고 물과 전기 공급을 끊는 봉쇄작전을 시작했다. 이에 레드셔츠가 격렬하게 저항하며 사흘 동안 사상자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 음식물을 싣고 돌진해 들어갔던 시위대 측 트럭들도 모두 총격에 부서지고 진입에 실패했다. 이로써 두 달간 이어진 태국 시위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지금까지 최소 59명으로 늘었으며 1700명 이상이 다쳤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강경 입장이다. 아피싯 웨차치와 태국 총리는 16일 국영TV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내전’ ‘테러리스트’란 격한 표현까지 썼다. 아피싯 총리는 “레드셔츠가 내전 상황을 야기한 만큼 작전은 계속될 것”이라며 “17일로 예정됐던 방콕 시내 모든 학교의 개학을 1주일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부총리와 군부가 만나 통행금지령을 논의했다”며 “무장 테러집단에 동참하는 시민들도 똑같이 처벌하겠다”고 덧붙였다. 미 CNN뉴스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17일 오후 3시부터 방콕 시내에 전면적인 통행금지령 발동을 선포할 계획이다. 그러나 16일 아크사라 케릇폰 합참부의장이 “지금 당장 통행금지까진 필요 없다”며 회의적인 의견을 내놓아 곧바로 실행에 옮겨질지는 미지수다.

통행금지가 아니어도 방콕은 이미 여러 지역에서 군인들이 막아서며 이동이 불편한 상황이다. AFP통신은 이날 “봉쇄작전 이후 시내 중심가에 시민은 물론 언론인의 출입도 통제됐다”며 “태국언론인협회(TJA)는 국내외 취재진의 안전을 보장키 어려우니 각별히 유의하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레드셔츠는 현재 정부의 봉쇄작전을 풀기 위해 고심 중이다. 시위대는 16일 오후 “군부대 철수 및 휴전을 위해 정부는 유엔이 중재하는 협상에 나서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시위대 지도자 중 한 명인 나타웃 사이꾸아 씨는 “지방에서 시민 수천 명이 합류하러 방콕으로 오고 있다”며 “정부가 봉쇄를 고수하면 결사 항전하겠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방콕 부두 인근 슬럼가 클롱트이에는 노동자 농민 수백 명이 모여 트럭 등을 이용해 시내 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로이터통신은 “봉쇄작전이 나흘째 이어지며 레드셔츠가 물과 음식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다”며 “시위대의 힘을 빼는 군경 작전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보도했다.

국제사회의 노력도 별다른 성과가 보이지 않고 있다.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대변인은 15일 “관련 당사자들이 평화를 위해 한 발씩 양보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정부와 시위대 모두 즉각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태국 정부 대변인은 “총리는 반 총장에게 현 정정불안은 태국 내부 문제로 국제기구 개입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며 “레드셔츠가 제안한 유엔 중재협상도 거부한다”고 밝혔다.

14일 업무를 중단하고 잠정 폐쇄에 들어간 미국대사관은 15일 최소 인원을 제외한 현지 직원 및 가족들에게 방콕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옮길 것을 권고했다. 또 태국 내 모든 미국인에게 위험지역 방문 중단을 당부하는 여행경계령도 발효했다.

한편 정부는 태국 시위가 격화되면서 현재 여행경보 단계를 2단계인 여행자제로 상향 조정한 상태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16일 “태국 시위가 더 격화될 경우 경보단계를 3단계인 여행제한으로 올릴 수 있으나 이 경우 태국 교민들을 소개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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