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수-노동, 연정 대결 ‘총선 연장전’ 브라운 “연정” 캐머런 “뻔뻔” ‘현직총리 연정 우선권’ 전례 자민 의석 줄어 성공 미지수
36년전 상황 되풀이하나 1당이 소수정부 구성했지만 정국혼란에 결국 다시 총선
향후 일정은 25일 개원때 ‘새 정부’ 발표 늦어도 20일까지 내각 짜야
영국 유권자들은 선거가 끝났는데도 누가 총리가 될지 애매한 상황에 답답해하는 표정이다.
6일 실시된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이 집권 노동당을 누르고 1당으로 올라섰으나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헝 의회’가 탄생했다. 절대 다수당이 없는 상황에서 노동당과 보수당이 차기 정부 구성을 놓고 본격적인 샅바싸움을 시작했다.
독일에서라면 당연히 제1당의 당수가 연정 협상을 주도하며 총리로 거론되지만 양당제 전통이 강한 영국에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단 집권당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연정 구성을 시도하고, 실패하게 되면 데이비드 캐머런 보수당 당수가 연정을 시도하게 된다. 1974년 집권 보수당의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선거에서 노동당에 졌는데도 누구도 과반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리직을 사임하지 않고 연정 협상을 주도한 사례가 있다. 선거에서 진 총리가 다시 집권을 모색하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영국의 총리는 국왕이 임명하기에 스스로 사임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만두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 집권 노동당은 1974년 사례에 따라 우선적으로 연정 협상을 주도할 뜻을 밝혔다. 브라운 총리는 7일 오후 총리 관저 앞에서 발표한 성명에서 “정치적 불안정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총리직을 유지하겠다”며 “자유민주당을 포함해 어떤 정파와도 연합하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고 밝혔다.
보수당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보수당은 1974년 사례가 불문법적 관행으로 정착했다고 보지 않는다. 영국 정치학자들 사이에서도 1974년 사례를 하나의 관행으로 봐야 할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캐머런 당수도 7일 오후 성명을 내고 “노동당 정부는 영국을 통치할 신임을 잃었다”며 “보수당은 강력한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자유민주당에 연정을 제의한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캐머런 당수는 이날 “일단은 소수당 정권을 꾸려나갈 가능성을 타진해 볼 것”이라면서도 “연정 구성 역시 고려하겠으며 자유민주당에 (연정 참여를) 제의하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당과 자민당이 여러 부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덧붙여 자민당에 확실한 ‘구애’ 신호를 보냈다.
보수당은 노동당의 연정 시도를 ‘패자들의 연합’이라고 비판했다. 보수당 예비내각 윌리엄 헤이그 외교부 장관도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의 협상은 뻔뻔스러운 짓”이라고 비난했다. 보수당이 1당으로 올라서 유권자의 신임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브라운 총리가 총리로 남아 재집권을 시도한다 해도 뜻대로 될지는 미지수다. 노동당과의 연정 대상인 자민당의 의석이 예상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이다. 선거 전만 하더라도 닉 클레그 자민당 당수가 사상 최초로 실시된 TV토론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많은 의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는 오히려 의석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노동당과 자민당이 연정을 해도 과반을 확보하지 못한다는 결정적 약점이 있다.
클레그 당수는 선거운동 기간에 “가장 많은 의석과 표를 획득한 정당이 정부를 구성할 권한을 위임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7일에도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해 제1당인 보수당이 정부 구성을 주도해야 한다는 데 힘을 실어줬다. 9일 의원 회의를 소집해 놓고 있어 이 자리에서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영국 정국은 1974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당시 히스 총리는 자유당(자민당의 전신)과 군소 정당들의 지원을 받아 내각을 구성하려 했으나 실패해 총선 4일 만에 물러났다. 이어 제1당에 오른 노동당의 해럴드 윌슨 당수가 총리를 맡아 소수 정부를 구성했다. 그러나 정국 불안이 이어지자 총리는 여왕에게 의회 해산을 청원했다. 결국 의회를 해산한 뒤 그해 10월 다시 총선을 실시해 노동당은 과반에서 3석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데 무한정 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25일 의회가 개원하면서 여왕이 올해 정부의 주요 입법 현안 등을 담아 발표한다. 여왕이 발표하는 형식을 취하지만 사실상 새로운 정부의 입법계획 등을 망라하는 것이기에 의회에서 과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따라서 늦어도 20일 이전에는 연정 협상과 내각 구성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런던=송평인 특파원 pisong@donga.com ::헝 의회(Hung Parliament)::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없는 의회를 뜻한다. 헝 의회란 말은 영국에서만 쓴다. 의회내각제로 운영되는 다른 나라에서는 소수당 의회(minority parliament)란 말이 사용된다. 영국에서 ‘헝 의회’가 탄생한 예는 20세기에는 1929년과 1974년 두 번뿐이다. 영국에선 총선 다음 날 승리 당의 당수가 버킹엄 궁으로 여왕을 예방해 새 정부 구성을 위한 권한을 형식적으로 위임받는다. 과반을 확보한 정당이 없을 경우 관습법에 따라 현직 총리가 정부를 구성할 수 있고 사임을 스스로 결정하기까지 총리직을 유지하게 돼 있다. 현직 총리가 연정 구성에 실패하면 집권당 다음으로 표를 많이 얻은 당의 당수가 정부 구성 협상을 주도하게 된다. ▼1만마일 유세 펼친 ‘40대 기수’… 브라운의 관록 압도 이튼-옥스퍼드 나온 엘리트 39세때 330년 된 당 이끌며 보수당의 귀족 이미지 바꿔▼ ■ 캐머런 보수당 당수는
영국 총선에서 승리를 이끈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런 당수(44·사진)는 마거릿 대처 전 총리에 이어 보수당 중흥을 이뤄낼 ‘40대 기수’로 꼽혀왔다. 그가 과연 13년 만의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총리직에 오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이번 총선에서 36시간 철야 유세와 1만 마일이 넘는 유세를 펼치는 등 강행군으로 상대적으로 늙고 지친 이미지의 고든 브라운 총리를 압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카메라 앞에서 매끈한 외모를 선보이는 캐머런은 2000년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상기시키는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 전략을 내세웠다”고 보도했다.
그는 2005년 마이클 하워드 당수가 총선에서 패배한 뒤 보수당 개혁과 집권을 내걸고 혜성같이 등장했다. 그는 39세의 나이에 데이비드 데이비스 의원을 더블 스코어 표차로 눌렀고 30대에 330년의 역사를 지닌 보수정당의 당권을 손에 거머쥐었다. 그는 산악자전거를 즐겨 타고, 인디 록음악을 좋아하는 젊은 의원이자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 요리하는 자상한 아빠이기도 하다.
1966년생인 캐머런은 영국 국왕 윌리엄 4세(1765∼1837)의 직계 후손이며, 증권계의 실력자인 아버지와 판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명문 사학인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 수석 입학해 철학, 정치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캐머런은 대학시절 부유한 가문 출신 학생들로 구성된 ‘벌링던 클럽’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했다. 명문가 출신의 그에게 노동당은 “노동자의 빈곤을 이해 못 할 정치인”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캐머런은 강력한 대처리즘적 경제개혁을 주장하면서도 기후변화 문제나 동성애자 권리 등에 오히려 노동당보다 포용력을 보여왔다. 또 어린이들과 고령은퇴자들의 빈곤문제 해법에 관심을 쏟았다. 그는 영국 사회를 ‘분열된 사회’로 규정하고 사회문제의 해결 없이는 경제 성공도 없다고 주장한다. 2008년 11월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집에서 TV를 통해 지켜보다 “정말로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가 미국을 새롭게 볼 것”이라며 환호하는 장면이 유튜브 동영상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캐머런은 보수당 당수가 된 이후로 영국의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사생활을 적극적으로 공개해왔다. 특히 심각한 장애가 있는 아들 아이번이 2009년 6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는 BBC가 캐머런 당수 부부와 세 아이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방송하기도 했다. 부인 서맨사(37)는 3월 말 넷째 아이 임신 사실을 공개했다. 첫아들 아이번이 숨졌을 당시 캐머런 부부의 아픔을 기억하는 유권자들에게 9월에 새 생명이 태어난다는 소식은 선거운동 기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캐머런이 4월 말 웨스트요크셔 석탄광산 지역을 찾았을 때 그는 전통적 노동당 지지자였던 광원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뉴욕타임스는 “캐머런이 상류계급의 이미지를 벗어던질 수 있었던 것이 총선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주한 英대사관의 ‘유쾌한 총선 설명회’ 한국 政-財-言 인사 등 초청 개표 보며 토론… 내기 걸기도▼ 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주한 영국대사관에서는 이색 조찬 겸 설명회가 열렸다. 영국대사관이 총선일에 맞춰 한국에 주재하는 주요국 대사와 한국의 정치인 경제인 언론인을 초청해 설명회를 가진 것. 이날 설명회에는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대사와 나성린 한나라당 의원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2시간에 걸쳐 개표상황을 지켜보며 영국의 선거제도와 절차, 이번 선거결과가 향후 영국 정치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질문하고 상호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참석자들은 과연 영국의 보수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건지,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얻지 못해 승자가 분명하지 않은 ‘헝 의회’가 나타날 것인지, 이 경우 제1당인 보수당이 어느 정당과 손잡고 내각을 구성할 것인지 등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특히 일부는 선거결과를 놓고 내기까지 벌였고, 개표 초반 설명회장에 켜 놓은 BBC 방송 화면에 보수당이 제1당으로 달리다 잠시 노동당으로 뒤집어지자 탄성을 지르는 등 희비가 엇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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