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법원, 親후세인 인사 총선 출마 허용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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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파 ‘문제 정치인’ 500명… 시아파 “미국 압력에 굴복”

이라크 항소법원이 3일 사담 후세인 정권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는 수니파 정치인 500여 명이 총선에 출마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무효화했다. 이에 따라 블랙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이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다음 달 7일 총선을 앞두고 격렬해지고 있는 수니-시아파 갈등이 누그러질 것으로 전망된다.

시아파 측은 그동안 수니파 후보들을 출마 금지하면 후세인 전 대통령과 연계된 ‘문제 인사’들을 사전에 걸러내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으나 수니파 측은 수니파를 견제하려는 시아파 정부의 술책이라고 반박해 왔다. 미국과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도 수니파 인사들을 배제한 이라크 선거는 ‘반쪽’이라며 우려해 왔다.

미국은 지난달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을 이라크로 보내 블랙리스트 문제를 둘러싼 갈등 완화를 이라크 정부에 주문했다. 크리스토퍼 힐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는 1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거는 공정해야 하며 모든 정치세력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일부 국민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현실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이라크 정부 측을 압박하기도 했다.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간 수니파 정치인 살레 알무트라크 씨는 판결 직후 “이라크 사법부가 정치 중립을 지키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며 반겼다. 반면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책임과 정의 위원회’ 측은 미국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했다며 법원을 비난했다. 위원회를 이끌고 있는 시아파 출신 정치인 알리 알라미 씨는 “미국 대사관이 출마 금지를 푸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고 미국 측을 겨냥했다.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가 속한 여당은 이날 성명을 통해 “후세인 전 대통령의 충성세력들을 정치권으로 되돌아오게 한 ‘피에 얼룩진’ 판결”이라고 유감을 밝혔다. 또 알말리키 총리는 이날 판결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의회를 긴급 소집해 줄 것을 의회 의장에게 요청했다.

블랙리스트 무효화 판결로 일단 선거의 공정성이 확보됐으나 후세인 정권에 충성한 정치세력을 정리하는 ‘과거사 청산’ 문제는 선거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고 외신들은 지적했다. 특히 수니파 후보들이 승리하더라도 후세인 정권과의 연계성을 철저하게 검증받은 뒤 이를 통과해야 공직 취임이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 선거관리위원회의 함디야 알후세이니 씨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이 출마할 수는 있으나 총선 이후 항소법원이 그들을 검증할 것”이라며 “만약 후세인 정권과 연계된 것으로 밝혀지면 당선이 취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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