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땐 ‘보트피플’… 돌아올 땐 美 해군 함장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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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공산화로 5세때 탈출 홍바 레 씨
34년만에 금의환향 “아버지꿈 이뤄 영광”

34년 전 떠날 땐 ‘보트피플’이었지만 돌아올 땐 미국 최신형 구축함의 함장이 돼 있었다. 7일 베트남 항구도시 다낭에 정박한 미 해군 구축함 ‘라센’호 함장 홍바 레 중령(39) 이야기이다. AP통신이 전한 그의 사연은 다음과 같다.

레 함장의 아버지는 1975년 베트남 해군 고위 지휘관이었다. 그는 사이공이 함락되고 공산군이 밀려오자 작은 어선에 가족을 포함한 400여 명의 피란민을 가득 태우고 바다로 나섰다. 레 함장은 그때 다섯 살이었다. 정처 없는 항해였다.

다행히 어선은 3일 만에 미군 함정을 만나 구조됐고 필리핀 미 해군기지와 미 캘리포니아 주 난민캠프를 거쳐 버지니아 주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아버지는 이곳에서 슈퍼마켓 짐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고, 나중에 점장까지 승진할 정도로 억척스럽게 일했다. 그 와중에도 자식들에게 바다에 대한 꿈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불어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올해 69세인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고향 방문의 꿈을 아들이 이뤄냈다.

미 해군에 입대한 레 씨는 39세에 300여 해병을 거느린 라센호 함장이 됐다. 미 해군 7함대에 소속된 라센호는 토마호크 미사일로 무장한 길이 155m의 최신식 이지스 구축함이다. 건조비만 8억 달러가 넘게 들었다. 함정에서 내려 베트남 땅을 밟은 레 씨는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군 함장으로 금의환향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면서 “개인적으로 크나큰 영광”이라고 감회를 밝혔다. 그는 이어 “많은 고난을 참고 헤쳐 온 아버지를 늘 닮고 싶었다”면서 아버지의 꿈을 마침내 자신이 이룬 데 대해 기쁨을 표했다. 서툴긴 하지만 베트남어로 “미국인이 된 것에 자부심을 느끼지만 베트남의 전통 역시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레 함장의 고향은 라센호가 정박한 다낭에서 북쪽으로 105km 떨어진 ‘후에’라는 도시이다. 거기에는 아직도 그의 친척들이 살고 있다. 그가 찾은 고향은 34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휴식지였던 다낭도 지금은 해변에 하이엇이나 메리엇 같은 유명 호텔들이 들어서고, 인근엔 프로골퍼 콜린 몽고메리가 설계한 골프장이 전 세계의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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