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소총리의 굴욕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5분


“득표 도움안된다” 총선 공약집 표지에 얼굴 안실려

파벌 수장들 지역구서 고전

일본 자민당을 50여 년간 떠받쳐온 기둥인 파벌이 위기를 맞았다. 지난달 중의원 해산 직전 당내에 몰아쳤던 아소 다로(麻生太郞·사진) 총리 퇴진 운동을 앞장서서 진압했던 각 파벌 수장들이 지역구에서 역풍을 맞아 자신의 당선조차 자신하지 못하는 처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파벌 수장들은 당시 “총선을 앞두고 아소 총리를 끌어내리면 당이 무너진다. 야당을 하는 한이 있어도 당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반(反)아소 세력을 봉쇄했으나, 지역구민들로부터 “왜 아소 총리를 지지했느냐. 자민당을 밀고 싶지만 자민당에 표를 주면 아소가 계속 총리를 할 것 아니냐”는 비판에 휩싸인 것이다.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파의 마치무라 노부다카(町村信孝) 회장, 3대 파벌인 고가파의 고가 마코토(古賀誠) 회장, 4대 파벌 야마자키파 야마자키 다쿠(山崎拓) 회장, 5대 파벌 이부키파의 이부키 분메이(伊吹文明) 회장이 모두 지역구에서 고전하고 있다. 예년의 경우 파벌 수장들은 승리가 확실한 자신의 지역구는 제쳐두고 파벌 소속 의원들의 지역구를 돌며 지원유세에 치중했으나, 이번 총선에선 발등의 불인 자신의 지역구 챙기기에도 벅차 지원유세는 꿈도 못 꾸는 형편이다. 특히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와 같은 홋카이도(北海道) 출신인 마치무라 회장은 “홋카이도에서 총리를 배출하자”는 민주당 열풍 때문에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대 파벌인 쓰시마파의 쓰시마 유지(津島雄二) 회장은 지난달 지역구민의 세대교체 열망을 받아들여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파벌 수장들이 지역구에서 낙선하거나, 지역구에서 떨어지고 비례대표를 통해 배지를 달 경우 영향력이 떨어져 예전과 같은 리더십을 발휘하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더구나 자민당이 야당으로 전락할 경우 돈이 많이 드는 파벌정치 구조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이제까지 자민당에 집중돼온 재계의 정치자금이 현저하게 줄어들 게 뻔하기 때문이다. 1955년 창당 이후 당 속의 당으로 군림해온 파벌이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아소파를 이끌고 있는 아소 총리는 당의 총선 공약집 표지에서도 얼굴이 빠지는 굴욕을 겪었다. 모든 정당 공약집 표지에는 당 대표의 얼굴사진과 함께 캐치프레이즈가 들어 있으나 자민당 공약집 표지에만 당 총재인 아소 총리가 보이지 않는다. 인기 없는 아소 총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선거에 불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민당’이란 당명도 공약집 표지 맨 아래에 보일락 말락 작게 적혀 있어 지지율이 추락한 집권당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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