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행렬 10km… 폭력사태 지방 확산

  • 입력 2009년 6월 17일 03시 00분


이란 대선 후폭풍… 하메네이, 의혹조사 지시

英신문 “민병대-경찰 대학 캠퍼스 난입 총격”

이란의 수도 테헤란 중심부 아자디 광장이 수십만 명의 반정부시위대가 뿜어내는 분노로 폭발 직전이다. 15일 광장 인근에서는 친정부 민병대의 총격으로 시위에 참석했던 시민 7명이 사망했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이란 당국은 16일 외신들의 반정부 시위 취재를 금지했으며 일부 서방 언론인은 강제 구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유혈사태로 치닫는 이란 사태

현재 경찰의 최루가스와 곤봉세례가 난무하는 아자디 광장은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축제 분위기가 넘쳐나는 광장이었다. 개혁파 후보 미르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지지하는 군중이 몰려나와 춤을 추며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러나 무사비 후보가 낙선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흥분한 군중이 선거 조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밀려들었다. 시위는 15일 최고조에 이르렀다. 테헤란의 상징이기도 한 이 광장에 있는 50m 높이의 자유기념탑 앞에는 수십만 명이 모여들어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무사비 전 총리까지 시위에 참가했다. 대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대중 앞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

AP통신은 이날 시위가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최대 규모였다면서 테헤란대와 혁명광장으로 향하는 행렬의 길이가 10km나 됐다고 전했다. 처음엔 평화롭게 진행됐으나 날이 저물면서 과격 폭력사태로 발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항의시위를 하는 시민들을 향해 ‘축구 경기에 지고 성내는 축구팬’이라고 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발언도 시위대를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집회를 마치고 돌아가던 시위대가 연료통을 들고 민병대 초소에 접근하다 민병대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같은 날 테헤란대 캠퍼스 기숙사에 경찰이 난입해 학생 여러 명을 사살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폭력시위는 지방으로까지 번져 이스파한 마샤드 등에서도 산발적인 시위가 이어져 경찰과 충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정국 안갯속으로

침묵하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측 지지자들까지 ‘맞불 집회’를 갖겠다고 선언해 이란 정국을 통제 불능 상태로 빠뜨리고 있다. 이란 당국이 조만간 계엄령과 통행금지령을 선포하는 등 강경진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13, 14일 시위대 170여 명을 체포한 경찰은 모하마드알리 압타히 전 부통령 등 수십 명의 개혁파 정치인을 체포해 탄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반관영 매체인 파르스통신은 이들이 폭발물과 무기를 소지한 혐의로 체포됐다고 전했다. 외신기자들의 테헤란 아자디 광장 접근도 막고 있다.

이 와중에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압승을 인정했던 아야톨라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15일 헌법수호위원회에 부정선거 의혹 조사를 지시했다. 이란 정부가 이번 시위 사태를 통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반영한 조치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이에 따라 헌법수호위원회는 16일 투표함을 재검표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의 아바스 알리 카드코다에이 대변인은 “표를 샀다거나 가짜 신분증을 사용했다는 등의 범법행위가 자행됐다고 결론 날 경우 재검표를 명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조치에도 국민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지만 항의시위로 선거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인지에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1999년과 2003년 시위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잠잠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 무효를 앞장서서 외치는 무사비 전 총리 스스로도 “정부가 선거 결과를 뒤집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란의 최고법률기구인 가디언위원회 대변인도 대선무효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국영 TV를 통해 밝혔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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