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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25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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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대신 자녀 등하교 돌봐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차로 40여 분 떨어진 소도시 펠럼매너의 시와너이초등학교에는 최근 방과 후 자녀들을 집에 데려가기 위해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아빠들이 부쩍 늘었다. 실직한 가장들이 엄마들을 대신해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책임지는 것이다. 맨해튼의 헤지펀드에서 일하다가 지난해 여름 실직한 제리 레비 씨(46)와 보험회사에서 실직해 1년째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앤드루 에머리 씨(45)는 요즘 거의 매일 학교 앞에서 만나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23일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로 실업률이 치솟으면서 일자리를 잃은 아버지들이 어머니와 함께 가사를 분담하는 ‘미스터 맘’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실업률은 지난달 현재 8.5%로 1983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실업률이 조만간 10%를 넘어설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이 지배적이다. 최근 매월 60만 명 이상씩 일자리를 잃고 있는 미국에서는 대규모 실업사태가 미국인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며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요즘 미국 사회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유행했던 ‘사오정(45세 정년)’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출생률이 높았던 세대를 말하는 전후 베이비붐 세대들의 실직이 급증하기 때문이다. 3월 말 현재 미국의 45세 이상 노동력의 실업률은 6.4%로 1948년 통계작성 이후 가장 높다. 한창 일해야 할 중년의 회사원들은 한 번 일자리를 잃으면 다시 직장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다.
실업률이 급등하면서 구인 구직 박람회에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실직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지난달 뉴욕 맨해튼의 한 호텔에서 열렸던 구인 박람회에는 구직자 수천 명이 몰려들어 오전 일찍부터 몇 시간씩 비를 맞으며 박람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 주의 세인트루시 카운티는 최근 급등하는 실업률로 경제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했다. 세인트루시 카운티는 경기침체가 심화되면서 실업률이 플로리다 주 67개 카운티 중 세 번째로 높은 12.8%까지 치솟자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등 경기부양책을 마련하고 있다.
뉴욕=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