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8년의 교훈]<上>독선이 낳은 독주

  • 입력 2009년 1월 15일 03시 03분


안보에 눈먼 네오콘 ‘민주주의’를 희생양 삼다

8년 전인 2001년 1월 중순, 취임을 코앞에 둔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조지 테닛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부터 두 시간 반에 걸쳐 안보 브리핑을 받았다.

테닛 국장이 보고한 미국 안보에 대한 3대 위협은 △오사마 빈라덴과 알 카에다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확산 △중국의 부상(浮上)이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등의 핵심 요직에 내정된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보는 세계는 달랐다. 그들에게 미국과 세계 평화에의 최대 위협은 단연 후세인이었다.

그해 봄 백악관에서 열린 국가안보회의에서 네오콘의 리더 격인 폴 울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은 이라크 남부에 미군을 보내 이라크군과 대치시키면 이라크 내 반(反)후세인 세력이 봉기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려 민주주의가 꽃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를 지켜보던 콜린 파월 국무장관 등 온건파들은 ‘후세인 제거가 그리 급한지, 이라크 민중이 그렇게 반응할 것이라고 어떻게 그처럼 확신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네오콘의 기세는 거셌다. 더 거슬러 올라가 1990년대 중반부터 네오콘 이론가들은 ‘후세인 제거’를 역설하고 다녔다.

부시 대통령에게 역사상 가장 낮은 지지율로 백악관을 떠나는 수모를 안긴 이라크전쟁은 이처럼 이미 임기 초부터 씨앗이 잉태돼 있었다.

이라크 침공을 놓고 진보진영에선 ‘석유 전쟁’이라고 비난하지만 네오콘들에게 후세인 제거는 ‘석유’ 같은 이권을 훨씬 뛰어넘어 그들의 DNA에 각인된 인생 최대 과업이었던 셈이다.

히틀러 집단학살 피해자를 가족이나 친척으로 둔 유대계가 많은 네오콘들은 어려서부터 독재자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감을 갖고 자라났다.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이후 10여 년째 이어지는 후세인 정권으로 인한 중동 정세의 불안정성은 ‘후세인을 뿌리 뽑지 않으면 두고두고 미국을 괴롭힐 고질(痼疾)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굳어졌다.

부시 대통령 역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등 국민을 굶기고 학대하는 독재자들에 대해 혐오감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성격이었다.

2001년 9·11테러는 네오콘의 위상을 강화시켰고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축출한 기세를 몰아 2003년 봄 9·11테러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그곳은 수렁이었다.

‘전략의 천재’로 불렸던 울포위츠를 비롯해 책상 앞에서 새로운 이라크를 디자인하겠다던 네오콘들의 자만심과 달리 현실은 단순하지 않았다.

후세인 군대와의 전투는 싱겁게 끝났지만 이라크는 종파 간 대립과 반미 게릴라전으로 치달았고 그후 6년간 발생한 미군 전사자는 4200명, 이라크인 인명피해는 수만∼수십만 명이었다. 9·11테러 직후 90%까지 치솟았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이 전쟁은 서방 세계를 분열시켰고, 반미 기류 확산 속에 미국의 리더십은 땅에 떨어졌다.

미국의 안전을 위해선 선제공격도 불사하는 부시 독트린은 미국 내에선 영장 없는 도청, 가혹심문 기법으로 이어졌다. 네오콘에게 ‘민주적 절차’는 너무도 성가신 2순위였고, 그 여파로 민주주의 대표 국가의 명예는 구겨졌다.

2006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참패한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들을 일선에서 내몰고 현실주의 외교 노선으로의 선회를 시도했지만 세계를 ‘적과 동지’라는 이분법 대립구도로 가른 채 하드파워만을 앞세운 부시 시대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낙인찍힌 뒤였다. 그의 실패가 ‘통합’과 ‘변화’를 기치로 내건 최초 흑인 대통령 당선의 가장 큰 밑거름이 된 것은 그나마 역사가 주는 위안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부시 대통령의 10가지 실수

◇대량살상무기(WMD)는 없었다=이라크를

침공한 명분이었던 WMD를 찾지 못함.

◇태풍 카트리나 대처 미숙=준비 안 된 연방재난관리청장을 지명하는 등 적 절한 대처에 실패.

◇실종된 이라크 전후계획=전후복구 청

사진 없음. 수많은 인명 피해에다

수천억 달러의 비용 씀.

◇9·11테러 경고 무시=테러 몇 주 전, 중앙정보국(CIA)의 테러첩보 무시.

◇임무 완수?=2003년 5월 ‘임무 완수’ 라는 플래카드 아래서 이라크 주요 전 투 종료 선언.

◇유엔 허가 없는 이라크 침공=유엔에서 여전히 불법으로 간주.

◇후세인과 알 카에다 연계 주장=주장을 밑받침할 증거가 없음.

◇빈 라덴 검거 실패=7년을 추적했으나 성과 없음.

◇교토의정서 비준 거부=자동차산업이 몰락하고 있지만 기후변화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름.

◇부유층 감세=지난해 대선에서 공화당 텃밭에서도 민주당 압승.

자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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