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100년만에 나타난 월가 구원자” NYT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7일 02시 56분



美 4대은행 와코비아 인수전 영향력 행사

기업들 도움 호소… 월가 구한 모건과 닮아


‘오마하의 현인’에서 ‘월가의 현인’으로?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최근 행보가 100년 전 월가를 위기에서 구했던 존 피어폰트 모건 JP모간 창업자와 닮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위기에 빛을 발하는 버핏 행보

웰스파고 은행이 최근 미국 4위 은행인 와코비아 인수전 전면에 나서면서 당초 헐값에 와코비아를 집어삼키려 했던 씨티그룹의 야심은 일단 제동이 걸렸다.

파산 위기의 와코비아는 졸지에 모두가 탐내는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이 배경에는 웰스파고 지분 9%를 갖고 있는 버크셔해서웨이의 버핏 회장이 있다는 게 월가의 관측이다.

6일 뉴욕타임스는 버핏 회장을 1907년 홀로 월가를 구해낸 존 피어폰트 모건 JP모간 창업주에 빗대 “100년 만에 월가의 구원자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5일 미 항소법원은 와코비아에 대한 씨티그룹의 배타적 협상권을 파기했다. 3일 와코비아는 당초 씨티그룹에 매각하기로 한 결정을 뒤집고 웰스파고에 은행을 통째로 팔기로 했다.

○ 상원의원들도 자문 구해

1907년 10월 뉴욕 증시가 폭락하고 투자신탁회사들이 무더기 도산 위기에 처하자 대은행가 모건이 팔을 걷어붙였다. 중앙은행이 없던 시절 그는 금융계 인사들을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모아 구제금융을 이끌어 냈다. 불안해하는 투자자들에게 “걱정 마라. 내가 모두 책임진다”고 했던 얘기는 유명하다.

뉴욕대 스턴 경영대학원 리처드 실라 교수는 “버핏 회장의 최근 행보는 모건과 비슷하다”며 “위기에 처한 국가를 구하면서 개인 이익도 동시에 추구하는 ‘수익성 애국주의(profitable patriotism)’라고 부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는 “위기에 닥친 기업들이 앞 다퉈 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며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자들도 그의 ‘혜안’에서 답을 찾고자 한다”고 전했다. 상원의원들도 구제금융법안 통과를 앞두고 그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하기도 했다.

버핏 회장은 금융위기가 닥치자 현 상황을 ‘경제의 진주만 공습’이라 평하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투자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그는 골드만삭스와 제너럴일렉트릭(GE)에 각각 50억 달러와 3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팔을 걷어붙였다.

또 웰스파고가 씨티그룹의 와코비아 인수전에 뛰어들도록 경영진을 설득했다. 웰스파고는 정부가 잠재부실을 떠안아야 했던 씨티그룹과의 협상과 달리 공적자금을 투입할 필요가 없는 방안을 내놓았다. 미 정부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 시장 살리고 이익 남기고

하지만 애국심만 내세워 무리한 투자를 한 것은 아니다. 과감한 투자와 함께 시장에 ‘안정’ 신호를 보내 결과적으로 시장 전체를 살리는 것.

그는 투자기업들에 대해 ‘미국 기업의 상징(GE)’, ‘훌륭한 글로벌 영업망과 유능한 경영진, 지적 자산을 갖춘 금융회사(골드만삭스)’라 평하며 값싸게 우량 블루칩을 긁어모으고 있음을 강조했다. 시장도 긍정적으로 반영했다. 그의 투자 결정 이후 며칠 만에 GE는 시가총액이 120억 달러나 증가했다.

와코비아 인수전에 뛰어든 것도 정부를 위한 것이 아니다. 미 서부지역에 영업망이 집중돼 있는 웰스파고로서는 와코비아 인수를 통해 동부와 남부에서 영업기반을 확보하는 등 시너지 효과가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버트 버너 버지니아대 경영대학원장은 “그는 투자자들에게 ‘지금이 투자의 적기’라는 신호를 보내며 시장에 안도감을 제공하고 있다”며 “그의 존재만으로도 수십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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