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A 선택 2008]힐러리, 표심 뒤집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3월 7일 02시 47분



《"우리 계산으론 저쪽이 기껏해야 대의원 4석을 더 가져갔을 뿐입니다."
미국 민주당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의 선거캠프 책임자인 데이비드 플라우페 씨는 5일 언론과 지지자들에게 'The Math'(수학)란 제목의 긴급 e메일을 보냈다.
"어제 4개 주 경선에 걸린 대의원은 370석인데 양측의 대의원 확보 차는 4석에 불과했다. 이는 대의원 37석이 걸린 워싱턴DC 경선에서 우리가 더 얻은 9석보다도 적고, 네브래스카에서 더 얻은…."》

한마디로 전날 '제2차 슈퍼화요일' 패배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 달라는 취지였다. 그가 어떤 계산법으로 4석이란 계산에 도달했는지는 명확치 않다. 대의원 산정 방법이 워낙 복잡하다 보니 언론사마다, 캠프마다 집계가 다른게 현실이다.

하지만 비록 산술적인 의미에서 4일의 패배가 오바마 후보에게 끼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해도 전체 선거 판도에 미치는 파장은 컸다. 일부 논평가는 "오바마 후보의 하루 전과는 전혀 다른 아침을 맞이했다"고까지 했다.

당내 경선에서 표심은 흐름에 매우 민감한데 그 물결이 바뀌는 조짐이 있기 때문이다.

5일 라스무센리포트가 발표한 전국 전화 여론조사에서 힐러리 후보가 48%, 오바마 후보가 43%의 지지를 얻어힐러리가 오바마를 다시 앞서기 시작했다. 1년여 넘게 10~20% 차이로 오바마를 앞섰던 힐러리는 지난달 5일 슈퍼화요일 이후 오바마에게 뒤졌는데 다시 뒤집힌 것.

특히 힐러리 후보는 여성 백인 유권자 사이에서 지지도가 급상승, 오바마 후보에게 20%포인트나 앞섰다. 라스무센 리포트는 정확성에서 다소 떨어지지만 신속성 때문에 널리 인용되는 여론조사다.

대권주자들의 당선가능성을 예측하는 `라스무센 정치시장'에서도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될 확률이 최근 87%에서 71.4%로 떨어졌다.

힐러리 후보는 5일 방송 인터뷰에서 자신과 오바마 후보가 정-부통령 러닝메이트가 될 가능성에 대해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며 "누구 이름이 투표용지의 윗부분(대통령 후보)에 오를지를 오하이오 유권자들이 분명하게 대답해 줬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힐러리 캠프는 "다음 달 22일 펜실베이니아 경선에서 이기고 슈퍼대의원 300명을 추가로 확보하면 최종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승리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펜실베이니아 경선 전망도 오바마 후보에게 밝지만은 않다. 대의원 188명이 걸린 대형 주인 이곳은 그가 4일 패배한 오하이오와 비슷한 측면이 많다.

힐러리 지지층인 블루칼라 노동자 계층과 노인 인구가 많고, 오바마 지지층인 18~24세의 젊은 층 비율이 10%에 불과하다. 흑인 인구도 상대적으로 적다. 최근 지역 여론조사에서도 힐러리가 6%포인트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오바마 후보는 5일 힐러리 후보의 '경륜론'을 강하게 비판하는 발언을 했지만 그런 네거티브 공격이 새로운 정치를 내세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파급력은 작았다.

물론 오바마 후보는 대의원 숫자에서 크게 앞서고 있으며 이는 6월초 경선 종료때까지 뒤집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힐러리 후보 측의 고양된 분위기나 자잘한 숫자계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선거판도가 외교안보, 경제 등 구체적 국가경영 능력을 검증하는 국면으로 접어든 점이다.

네오콘(신보수주의) 기관지인 위클리 스탠더드는 5일 '(공화당 후보가 된) 존 매케인이 해야 할 첫 번째 일'로 "오바마의 거품을 터뜨려 구름 위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외교안보 등 현안을 놓고 본격적으로 논쟁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매케인 후보의 공화당 후보 확정으로 구체적인 국가경영 능력이 쟁점으로 부각되는 분위기다.

변화와 희망의 메시지, 뛰어난 연설능력, 현 정부의 실정에 반발한 젊은 층의 '완전히 바꿔줘' 욕구가 빚어낸 거대한 물결 위에 올라타 질주해 온 오바마 후보가 새로운, 어쩌면 비로소 진정한 도전에 직면했다는 게 많은 사람의 관전평이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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