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밋빛’ 日신도시, 어느새 애물단지로

  • 입력 2007년 8월 2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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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공예정 31년 지났는데… 아직도 터닦기지바 신도시는 1976년 완료할 예정이던 개발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23일 지바 신도시 북부지구의 한 곳에 자전거전용주차장 철거공사를 마치고 택지 터닦기를 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지바=천광암  특파원
완공예정 31년 지났는데… 아직도 터닦기
지바 신도시는 1976년 완료할 예정이던 개발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23일 지바 신도시 북부지구의 한 곳에 자전거전용주차장 철거공사를 마치고 택지 터닦기를 한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지바=천광암 특파원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샐러리맨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는 데 큰 공헌을 한 신도시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교통 불편 등을 이유로 젊은 세대가 신도시를 외면하면서 30, 40년이 넘도록 잡초가 우거진 채 방치된 개발 예정지도 적지 않다. 입주할 당시 대부분 젊은 학부모였던 주민들이 나이를 먹고, 주거와 상업시설이 노후화하면서 ‘올드 타운(Old Town)’의 대명사가 된 곳도 즐비하다. 신도시는 닥치는 대로 많이 짓는 것이 능사일까. 한국보다 앞서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 시대를 맞은 일본의 경험을 통해 조망해 본다.》

○ 실제 인구 당초목표의 25% 불과

도쿄(東京) 도심에서 전철을 타고 동북쪽으로 1시간 정도 달리면 지바(千葉) 신도시의 심장부인 ‘지바뉴타운(일본에서는 뉴타운이라고 함) 중앙역’에 닿는다.

전철 문을 나서면 맨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대형 콘크리트 건물과 입주자 모집 광고판들. 어디를 봐도 이제 막 조성이 시작된 신도시 같은 모습이다.

하지만 ‘일본 최대 신도시’라는 야심 찬 목표와 함께 지바신도시 개발의 막이 오른 것은 38년 전인 1969년의 일이다. 빠른 곳은 1970년대 후반부터 입주가 시작됐다.

당초 1976년까지 끝낼 예정이던 개발이 아직도 끝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입주 수요가 예상을 크게 밑돌았기 때문이다.

개발 주최인 지바 현 등은 당초 34만 명이던 계획인구를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만3000명으로 낮췄는데도 실제 인구는 53% 수준인 8만2000명에 머물러 있다.

○ 개발의 끝은 ‘빚잔치’

지바신도시는 베드타운(Bed Town)으로서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교통이다.

도쿄와의 거리가 멀어 유일한 전철노선 ‘호쿠소(北總) 선’을 이용하지 않고는 출퇴근을 할 방법이 없다.

통근시간은 둘째 치고 요금부터가 만만치 않다.

지바신도시의 서쪽 끝 니시시로이(西白井) 역에서 동쪽 끝 인바(印번)일본의대 역까지 5구간 편도요금이 630엔(약 5000원)이나 된다.

지바뉴타운 중앙역에서 도쿄역까지는 1220엔(약 9760원), 할인 혜택을 듬뿍 적용한 반년짜리 정기권이 26만2410엔(약 210만 원)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지갑은 잃어버려도, 정기권은 잃어버리지 말라”는 말이 이곳 주민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한다.

턱없이 비싼 요금을 받는다고 해서 철도회사가 큰돈을 버는 것도 아니다. 1979년 3월 호쿠소 선이 개업한 이후 지금까지 누적 영업적자만 350억 엔(약 2800억 원)이 쌓였다.

철도회사 측은 “1120억 엔(약 8960억 원)에 이르는 빚을 다 갚으려면 요금을 내릴 여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지바 현도 개발이 끝나는 2013년 시점에 1000억 엔(약 8000억 원)이 넘는 결손을 떠안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래저래 지바신도시 개발 계획은 ‘빚잔치’로 막을 내릴 운명인 셈이다.

○ 신도시 덮친 ‘고령화 폭탄’

거주 인구가 목표 인구를 크게 밑도는 수요 부족 현상은 다른 대부분의 신도시도 마찬가지다.

일본 최초의 신도시로 ‘성공모델’이라고 공인된 오사카(大阪) 부 센리(千里) 신도시만 해도 현재 인구는 목표의 60%인 9만여 명에 불과하다.

인구의 고령화 현상도 기존 도시보다 심각하다.

1970년 센리 신도시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은 2.8%로 오사카 부의 5.2%에 비해 절반 수준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센리 신도시가 18.8%로 오사카 부의 14.8%를 앞질렀다.

주민의 연령층이 다양하게 뒤섞여 있는 기존 도시와 달리 신도시는 비슷한 연령층이 비슷한 시기에 대규모로 입주했기 때문에 고령화 문제가 단기간에 급속히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젊은 층이 신도시를 외면하면서 빈집과 빈 상가도 급속히 늘고 있다.

이토 고스케(伊藤公介·자민당) 의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도쿄 도의 다마(多摩) 신도시에 있는 후지미다이(富士見台)단지는 전체 335채 중 106채가 빈집이다.○ ‘새 단장’도 쉽지 않아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지어진 신도시 아파트들은 하루빨리 재건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한 상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신규 주택단지 개발 위주의 신도시 정책을 기존 주택단지 재건 지원 위주로 전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신도시 재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기존 아파트의 재건축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주거지로서 신도시의 인기가 떨어져 추가 입주자를 모집하기 어려워 재건축 비용을 모두 주민들이 부담해야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지은 지 40년이 지난 다마신도시의 한 대형단지는 10년 전부터 재건축 이야기가 나왔지만 논의는 원점을 맴돌고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 일본의 신도시 개발史

일본의 신도시 개발은 1961년 오사카(大阪) 부에 센리(千里) 신도시가 조성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1966년에는 아이치(愛知) 현에 고조지(高藏寺) 신도시가, 1967년에는 도쿄(東京) 도에 다마(多摩) 신도시 조성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는 1963년 토지의 수용 등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을 가능케 하는 ‘신주택시가지개발법’을 시행하는 등 국책사업으로 신도시 개발을 적극 추진했다.

일본 정부는 1986년 이 법을 개정해 신도시에 대학을 유치할 수 있도록 하고 ‘특정업무지구’를 설정해 주민생활에 필요하지 않은 시설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 법을 근거로 일본주택공단, 택지개발공단,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본 전역에 걸쳐 49개의 신도시를 개발했다.

49개 신도시의 총인구는 168만 명으로 평균 3만4000여 명 수준이다.

개발면적이 2863만 m²에 이르는 일본 최대의 다마 신도시도 인구는 20만5000명가량이다.

일본의 신도시 중에는 드물지만 강제토지수용이 가능한 신주택시가지개발법을 활용하지 않고 조성된 사례도 있다. 가나가와(神奈川) 현에 위치한 인구 13만6000명의 고호쿠(港北) 신도시가 여기에 해당한다.

■ ‘살고 싶은 곳’ 3년째 1위 도쿄 올드타운 ‘기치조지’

일본 신도시의 공동(空洞)화를 재촉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인구의 도심 회귀(回歸)가 꼽힌다.

그러나 변두리지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람이 떠나는 것은 아니다. 도쿄(東京) 도 무사시노(武藏野) 시에 위치한 ‘올드 타운(Old Town)’ 기치조지(吉祥寺)가 대표적인 경우다.

기치조지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도쿄 등 수도권 주민 6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005년 이후 3년 연속 ‘살고 싶은 곳’ 1위를 차지했다.

기치조지가 선망의 대상 주택지로 떠오른 가장 큰 이유는 전철역을 중심으로 걸어서 20분 이내에 ‘없는 게 없다’는 점이다.

우선 역 주변 상가에는 전후(戰後) 암시장을 방불케 하는 재래 상가가 있는 반면 현대식 대형 쇼핑시설도 골고루 들어서 있다.

또 남쪽에는 작은 동물원 겸 자연공원이, 북쪽에는 정원 8000명 규모의 세이케이(成蹊)대가 자리 잡고 있다. 교외이면서도 도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점도 기치조지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지바(千葉) 신도시는 도쿄 도심까지 가려면 1시간이나 걸리지만 기치조지는 전철로 15∼20분 만에 부도심인 신주쿠(新宿)나 시부야(澁谷)에 닿을 수 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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