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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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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아침 워싱턴포스트를 펼쳐 든 미국인들은 ‘친애하는 미국 친구들에게’로 시작되는 편지를 읽으며 시대의 변화를 새삼 절감했을 것이다.
베트남전쟁 종전 32년 만에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한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주석이 전면광고를 내서 미국인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한 나라의 정상이 신문광고로 방문국 국민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찌엣 주석은 미국에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제퍼슨의 일화를 통해 미-베트남 간 우정의 깊은 역사를 소개한 뒤 “두 나라의 관계엔 부침이 있었고 슬픔 가득 찬 과거가 있었다”며 베트남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그러곤 “베트남에 미국은 항상 주요한 동반자가 될 것이고 미국과의 다각적인 협력에 대한 우리의 약속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미국인들의 역동성과 창조성, 개방성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두 나라 간 우정과 협력이 영원히 성장해 가길 바란다”는 말로 편지를 맺었다.
22일 백악관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과 오찬에서도 프래그머티즘(미국에서 꽃핀 실용주의 철학)을 온몸으로 보여 준 쪽은 찌엣 주석이었다. 부시 대통령은 양국 간 교역과 외교 협력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반정부 인사 구금 등 베트남 인권 문제의 진전을 간접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찌엣 주석은 어젠다를 미래지향적이고 더 실리적인 쪽으로 이끌어 갔다. 그는 “베트남은 이제 매력적인 비즈니스·투자환경을 지닌 안전하고 안정된 나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며 “미국과 베트남 앞에는 더욱 지속 가능하고 과실이 풍부한 관계를 맺어 갈 전례 없는 기회가 펼쳐져 있다”고 강조했다.
21일 미 의회 지도부와의 면담에서도 일부 의원이 거의 1시간가량 인권 문제를 물고 늘어졌지만 찌엣 주석은 눈살을 찌푸리지 않은 채 “베트남은 인권을 존중한다”며 “의원들이 말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민주 인사가 아니라 나라의 안보를 위협하는 인물들로 실정법을 위반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하면서 담담하게 대처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에 앞서 이날 응우옌깜뚜 베트남 통상차관은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와 미-베트남 무역투자협정에 공식 서명했고 미국 언론은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진행하기 위한 토대가 마련됐다고 분석했다. 미국과 베트남의 교역량은 2001년 15억 달러에서 지난해는 102억 달러로 6배 이상 늘어났다. 베트남 경제는 2005년 8.4%, 2006년 8.2% 등 고도성장을 거듭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최대 9% 성장과 500억 달러 수출이 공식 목표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응우옌민찌엣 주석은…▼
올해 65세.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60년대 초반 명문 사이공대에서 수학을 전공하다 ‘민족해방전쟁’에 뛰어들어 옥고를 치렀다. 1965년 공산당에 입당한 그는 남부 베트남 지역 공산당 청년 조직을 이끌었고 미군과 베트콩 게릴라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미토 지역 전투에도 참가했다. 2000년 호찌민(옛 사이공) 시 당서기장을 거쳐 지난해 6월 주석에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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