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1>해고 없는 기업 BMW의 비밀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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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의 파격적인 협상안 제시를 통해 건설된 BMW 라이프치히 공장의 모토는 ‘숨쉬는 공장’이다. 건물 바닥의 페인트부터 공장 조경까지 친환경 설계를 적용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배려했다. 사진 제공 BMW
노조의 파격적인 협상안 제시를 통해 건설된 BMW 라이프치히 공장의 모토는 ‘숨쉬는 공장’이다. 건물 바닥의 페인트부터 공장 조경까지 친환경 설계를 적용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을 배려했다. 사진 제공 BMW
《독일 뮌헨 시의 올림피아파크 앞에는 네 개의 실린더 모양을 한 거대한 건물이 눈길을 끈다. 애칭이 ‘4실린더’인 이 건물은 BMW의 본사. 자동차의 4기통 엔진을 본떠 만든 것이다. 지난해 12월 13일 BMW 공장 내부를 살펴보기 위해 ‘4실린더’의 바로 뒤편 도장 공장에 들어섰을 때 기자를 당혹스럽게 한 것은 사람을 찾을 수 없고 컴퓨터와 로봇만 바삐 돌아가는 풍경이었다. 안내를 맡았던 이 공장 노동자 안드레아스 헤메를 씨는 “도장에 사용하는 페인트가 인체에 해로워 1990년부터 사람 대신 로봇이 작업의 대부분을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페인트공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당시 도장 일을 하던 900명은 단 한 명도 해고되지 않고 1, 2년간 교육을 새로 받은 뒤에 품질 검사와 정밀 마무리 작업, 자동화 시스템 통제 등의 업무로 옮겨갔습니다. 정밀 마무리 공정이 신설되고 품질 검사가 강화돼 결과적으로 제품 질도 높아졌죠.”

페르 앙커존 인사노무담당 부장은 “BMW에서 감원과 해고는 없다”고 말했다.

○노조 양보로 얻어낸 일자리

GM, 포드, 도요타 등 세계적인 자동차기업들이 생산비 절감을 위해 해외로 떠나는 것과 비교하면 BMW의 행보는 유별나다. BMW의 해외 생산량도 늘기는 했지만 다른 기업과는 달리 국내 생산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 회사의 국내 생산량은 1996년 57만 대에서 2005년 85만 대로 늘어 국내 생산 증가율이 세계 15대 자동차 업체 중 최고인 49.1%를 기록했다.

여기에다 50년 연속 흑자와 20년 무파업을 이어 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일자리의 안정과 노사화합이 있다. 앙커존 인사노무담당 부장과 슈테판 슈미트 종업원평의회 의장(노조위원장)은 BMW 노사관계의 대원칙에 대해 한목소리로 답했다.

“노사의 최우선 과제는 회사의 이익입니다. 노조나 산별노조연맹 등 그 어떤 것도 회사의 이익에 우선할 수는 없어요.”

BMW의 노사는 특별한 주제가 없어도 주 1회 얼굴을 맞대고 회사의 중요 현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한다. 지난해 12월 13일의 정기회의에서 화제는 2005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라이프치히 공장 얘기로 시작됐다.

종업원평의회 의장 비서인 페터 로란트 씨가 “2005년까지 하루 570대를 생산하던 라이프치히 공장의 하루 생산량이 지난달 650대를 돌파했다”고 말했다.

보고를 듣던 한스 게오르크 시미엘(노동법 담당) 부장은 감회 어린 목소리로 “그때는 참 많이 싸웠는데…”라며 공장 터를 놓고 노사가 다투던 2001년을 회고했다

당초 경영진의 계획은 BMW3시리즈를 생산할 신설 공장을 체코에 세운다는 것이었다. 독일에 비해 체코의 인건비나 땅값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조는 독일 내에 세워야 한다고 맞섰다.

그 대신 노조는 파격적인 타협안을 제시했다. 주당 3시간 초과 근무(주 38시간 근무)를 해도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않기로 했고 주당 생산시간을 60시간에서 140시간까지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데 동의했다. 이는 독일 내 BMW 공장 가운데 가장 유연한 근로시간 모델이었다.

신설 공장의 급여 수준도 뮌헨 공장 등의 평균 급여보다 약 15% 낮게 정했다. 어렵게 라이프치히에 유치된 공장은 지난해 6월 10만 대 생산을 넘어섰고 고용인원은 5500명이다.

○위기가 만들어 낸 유연성의 전통

미래를 위해 현재의 단기적 희생을 감수하는 BMW 노조의 선택은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BMW 역사상 최대 위기로 꼽히는 1959년 겨울 그 전통은 시작됐다.

당시 BMW사는 신제품 전략 실패로 도산 위기를 맞아 벤츠에 매각될 처지에 놓였다.

주주총회 날인 그해 12월 9일. 대주주인 헤르베르트 콴트와 노조 대표인 쿠르트 골다가 어두운 표정으로 마주 앉았다.

골다 대표는 “노조원들이 희생하겠다. 신규 자금을 투입하면 BMW는 살아날 수 있다”며 임금동결 등을 선언했다. 이에 감동한 콴트는 개인 재산을 모두 털어 회사를 살리기로 했다.

슈미트 의장은 “결국 노동자들이 회사 매각을 막은 셈”이라며 “그때부터 노사가 회사의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고 서로 희생하는 전통을 다졌다”고 말했다.

이런 전통은 BMW의 독특한 근로 유연성으로 이어졌다.

이 회사는 1986년부터 탄력적 근로시간 제도를 도입해 토요일 근무를 재개했다. 작업 상황에 따라 3주에 한 번은 근로자가 근무 요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제도를 시작하면서 공장 가동시간은 주 80시간에서 99시간으로 높아졌고 생산성이 24% 이상 향상됐다.

1996년에는 근무시간 계좌 제도가 마련됐다. 바쁠 때는 별도의 수당 없이 초과근무를 하고, 이렇게 적립한 시간만큼 다음에 쉬는 방식이다. 연간 적립할 수 있는 근무시간은 200시간.

많은 기업의 근로자들이 일이 많을 때는 초과근무수당을 받지만 경기가 악화되면 해고의 위기를 맞는다. 근무시간 계좌 제도는 이 같은 위험을 없앴다.

도장공장 맞은편의 조립공장에 들어서면 한 층에서도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다르다. 근로자들이 작업 종류에 따라 최대한 편한 자세에서 일하도록 만든 것이다. 노무담당 앙커존 부장은 “아무리 자동화를 해도 자동차는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라며 “근로자가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은 모든 국가정책에 우선”

쾰러 獨대통령 대화합 제안에 노동-경영계 기류 변화

“일자리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모든 국가 정책에 우선합니다.”

호르스트 쾰러(사진) 독일 연방 대통령은 지난해 5월 22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노총 전국대의원대회 연설에서 ‘일자리를 위한 정치적인 우선 원칙’을 제안했다.

그는 “국가나 사용자, 노동자 모두 자신들의 행동이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쾰러 대통령은 이를 위해 복지비 등 임금 부대비용의 삭감, 고용 유연성, 실업자 교육 등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노조에는 절제를, 사용자에게는 봉사와 책임을 주문했다.

세계 1위 수출국이며 제조업 강국인 독일의 노동시장은 얼핏 한국과 닮았다.

독일에서도 공장의 해외 이전 압력이 거세지고 시간제 근로자 등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있다. 실업률은 10%(2005년 기준)에 육박한다.

쾰러 대통령의 제안에 독일의 노동계와 기업은 조금씩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독일의 대다수 자동차기업 노조가 소속된 금속노조(AG Metal) 니더작센 주 하르무트 마이너 지부장은 “글로벌 경쟁에 대응하는 것이 노사 모두의 과제”라며 “노조도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생산의 효율을 높이는 데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9월 폴크스바겐이 주 근무시간을 28.8시간에서 33시간으로 늘리는 노사 합의 때 참여했다.

독일 노조는 최근 한국과 유사한 위기를 맞고 있다. 회사 측이 노조 간부에게 돈을 건넨 ‘하르츠 스캔들’은 한국 현대자동차와 비슷하다.

8개 산별노조의 연합체인 독일 노총의 조합원 수는 1991년 1180만 명에서 2005년 677만 명으로 급감했다.

산업별 단체협약의 전통도 바뀌고 있다. 기업들이 국제 경쟁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기업별 협약의 여지도 확대되고 있다.

쾰러 대통령은 이 같은 변화를 “어느 한쪽의 약화가 아니라 일자리를 위해 각 부문이 효율적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너 지부장은 “노사 공동 결정은 독일의 오랜 전통”이라며 “그 전통이 일자리 위기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이상 독일), 파리(프랑스)

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이상 미국)

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사이타마·도쿄(이상 일본)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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