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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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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득 3000달러…동란 조짐도?
지난달 8일 광둥(廣東) 성 포산(佛山) 시 순더(順德) 구 싼저우(三洲) 촌에서 주민 3000여 명이 인근 쌀 가공공장의 완공 기념식에 참석한 당정 간부와 하객 300여 명을 인질로 붙잡고 집단 항의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농기구를 들고 주변 도로를 점거하며 하객을 에워싼 뒤 “포산 시 정부가 농민들의 토지를 헐값에 강제 수용해 3배가 넘는 비싼 값에 외국계 회사에 팔았다”며 거칠게 항의했다. 농민들의 시위는 무장경찰이 최루탄을 쏘며 강제해산할 때까지 10여 시간 계속됐다.
이 같은 집단소요 사건은 특히 최근 들어 급증하고 있다. 1993년 8700건에 불과하던 집단소요 사건이 지난해 8만7000건으로 10배 늘었다.
공권력에 대한 도전도 최근 빈발하고 있다. 예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양상이다. 올해 6월엔 후난(湖南) 성 샹인(湘陰) 현에서 두 마을 주민 간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의 차량을 주민들이 불태우고 난동을 계속 부려 경찰관 몇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범죄도 크게 늘었다. 1995년 162만1003건이던 형사범죄가 지난해 464만8401건으로 10년 만에 2.87배로 늘었다.
가장 큰 원인은 지역 간, 계층 간 빈부 격차다. 지난해 중국의 전국 평균 1인당 GDP는 1703달러. 대도시인 상하이(上海), 베이징(北京), 톈진(天津)은 이미 평균의 3배인 5000달러 안팎이다. 반면 구이저우(貴州) 및 간쑤(甘肅) 성의 1인당 GDP는 1000달러에도 못 미친다. 인민들의 권리의식도 크게 향상됐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정부 상대 소송에서 민간인의 승소율은 40%에 불과했지만 요즘은 75%에 가깝다. 법치에 대한 욕구가 분출하고 있는 방증으로 보인다.
이같이 사회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권리의식이 높아지면서 중국 공산당이 크게 긴장하는 표정이다. 아시아 각국이 경제성장 과정에서 겪었던 ‘동란’을 중국도 겪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 공산당은 이런 ‘동란’을 겪지 않고 어떻게 평온한 방식으로 정치민주화를 이룩할 것인가에 골몰하고 있다.
○ “민주는 좋은 것(民主是個好東西)”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7일 중국 공산당 산하 중앙당교가 발행하는 주간 ‘쉐시(學習)시보’에 실린 이 같은 제목의 긴 글을 전재했다.
필자는 위커핑(兪可平) 중국 공산당 편역(編譯)국 당대마르크스주의연구소 소장 겸 비교정치 및 경제연구중심 주임. 그는 중국 공산당의 정책과 진로에 직접 영향을 끼칠 만한 역량 있는 중견 학자로 꼽힌다.
쉐시시보에 실린 글은 공산당 중앙당교의 신문에 실린 글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위 소장은 그는 “민주란 정국 불안정을 초래하고 행정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제도 중 가장 좋은 정치제도”라며 “의식주가 아무리 좋아도 민주적 권리가 없다면 인류의 인격은 불완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민주가 법제도를 훼손하고 사회질서를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이는 민주의 허물이 아니라 정치가의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은 사회불안을 감수하고서라도 민주주의를 실행해야 한다는 뜻이 내포됐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통제 불능’의 사태는 빈부 격차에다 소수 민족문제까지 겹쳐 있는 중국의 공산당 지도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이다. 이 글은 공산당이 지금까지 허용해 온 범위를 일거에 뛰어넘은 셈이다.○ 정치개혁 논의 갈수록 활발
이 글의 사례에서 보듯 최근 중국에서는 정치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흐름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서구의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도입해 실시하자는 주장. 다른 하나는 서구 민주주의와 중국의 문화전통을 결합해 새로운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창출하자는 주장이다.
양측 모두 중국의 현 정치체제를 계속 끌고 갈 수 없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감시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일치한다.
전자는 중국 헌법에 규정된 공산당 일당독재와 간선제인 ‘민주집중제’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며, 사회주의라는 상부구조와 시장경제라는 하부구조가 어긋나는 만큼 이를 제대로 결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특색의 민주주의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중국의 사회, 역사 조건이 다른 나라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56개 민족, 13억 인구를 거느린 960만 km²의 초대형 국가를 운영하는 데는 서구의 방식만으로는 안 되고 중국 전통과 결합된 새로운 방식의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미래 어떻게 될까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제4세대 지도부는 내년 가을 열리는 제17차 당 대회 이전에 정치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한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중국의 새로운 미래 정치체제는 곧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다당제와 직접선거를 핵심으로 하는 서구 민주주의를 가까운 시일 내에 도입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은 올가을 향(鄕)·진(鎭)·촌(村)의 당 대표 선거에서 직접선거를 허용했다. 제한적이지만 후보 중 일부가 낙선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원자바오(溫家寶) 국무원 총리는 올해 9월 초 유럽 방문을 앞두고 ‘조건이 정비되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직접선거 범위를 성(省)급까지 확대할 방침임을 강력 시사했다.
후 주석은 사회주의 현대화 강대국의 길을 걷는 중국을 거론하면서 “민주가 없다면 현대화도 없다”고 말했다. 이런 언급은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법치주의와 시장경제의 장점을 받아들이되 소득불균형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법제와 사회경제 제도가 빠르게 완비돼 나갈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1978년 ‘사회주의 초급단계론’을 외치며 사회주의 중국에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시장경제를 전격 도입했던 덩샤오핑(鄧小平)처럼 후 주석 지도체제가 1인당 소득 3000달러 시대를 맞아 새롭게 선보일 정치제제의 밑그림이 주목된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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