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테니스가 아니야”…페데러 ‘초능력샷’에 경외감

  • 입력 2006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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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데러
로저 페데러
최근 수년간 테니스 애호가들은 ‘페데러 모멘트(Federer Moment)’라고 할 만한 것을 체험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0일 보도했다. 스위스 출신의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데러가 경기를 하는 어느 순간엔 마치 물리적 법칙이 통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해서 생긴 말이다.

지난해 페데러와 앤드리 애거시가 맞붙은 US오픈 테니스대회 결승전 4세트.

해설자인 왕년의 테니스 스타 존 메켄로 씨는 “저 위치에서 어떻게 위닝샷이 가능한가”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위닝샷이란 선수가 친 공이 상대편의 라켓에 맞지 않고 점수를 딸 정도로 완벽한 샷을 말한다.

당시 페데러는 뒤로 움직이고 있었고 자세를 가눌 시간도 없었다. 그건 ‘매트릭스’ 같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었다.

‘무한 유희’를 쓴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테니스광인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 씨는 뉴욕타임스에 쓴 글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때 내가 무슨 소리를 질렀는지 알 수 없다. 아내가 방에서 뛰어나왔고 난 소파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스포츠 역사에서 이런 순간은 흔치 않다. 농구의 마이클 조든이나 권투의 무하마드 알리 같은 극소수만이 그런 순간을 보여 줬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이 점프해 중력이 허용하는 것보다 한두 박자 더 오래 공중에 머물러 있던 조든이나, 캔버스 위를 나비처럼 날아 한 차례의 잽만이 허용될 법한 시간에 두세 번의 잽을 날리던 알리에게서만 볼 수 있었던 장면이 테니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윔블던 경기 준결승전에서 페데러에게 완패한 요나스 비에르크만은 기자회견에서 “페데러의 완벽에 가까운 경기를 결승전에서 볼 수 있게 돼 오히려 기쁘다”고 말했을 정도다.

페데러는 라파엘 나달과의 윔블던 결승전 2세트에서도 다시 ‘그 순간’을 보여 줬다. 페데러는 공을 측면과 평행으로 낮게 날려 나달의 리듬과 균형을 깬 후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각도의 크로스 코트 백핸드로 점수를 얻었다.

이런 각도는 극단적인 톱스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현대 테니스는 서브와 발리를 통해 아기자기하게 점수를 얻는 고전 테니스와는 달리 베이스라인에서 강력한 패싱샷으로 승부한다. 페데러는 ‘힘의 경기’로 변해 자칫 지루한 게임이 될 수 있는 현대 테니스에 극단적인 톱스핀을 사용해 여성적인 ‘미묘함’을 되살리고 있다.

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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