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부자 2인의 엇갈린 운명

  • 입력 2005년 6월 1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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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세계 500대 부호를 발표했다.

러시아 최고의 부자는 개인 재산 150억 달러의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41·세계 16위) 당시 유코스 회장. 2위는 106억 달러의 로만 아브라모비치(38·세계 38위) 추코트카 주지사였다.

1년이 조금 지난 지금 두 사람의 운명은 대조적이다.

▽크렘린에 맞서다 불행 자초=탈세 혐의로 구속 중인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은 31일 모스크바 법원에서 9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16일부터 12일째 법정에 나와 하루 2∼4시간씩 모두 1000쪽이 넘는 판결문 낭독을 들어야 하는 곤욕을 치르면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표정이었다.

2003년 10월부터 583일 동안 복역한 그는 앞으로 7년 반을 더 감옥에 있어야 형기를 채울 수 있다.

러시아 최대의 민간기업이던 유코스가 공중분해 되면서 그의 개인 자산은 1년 만에 22억 달러로 줄어들었다. 이날 함께 법정에 선 창업 동지인 플라톤 레베데프 유코스 대주주도 9년형을 선고받았다.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은 “(관할 법원인) 바스만 법원에 기념비를 하나 세워야 할 판결”이라며 어이없어 했다. 변호인들도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번 판결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즉각 항소할 뜻을 비쳤다.

서방과 러시아 인권단체들은 그동안 이번 재판이 ‘정치적 보복’의 성격이 짙다고 비판해 왔다.

▽조심스러운 처신으로 살아남아=지난주 아브라모비치 주지사는 크렘린으로부터 주지사 연임 통보를 받았다. 주지사는 면책특권이 있는 연방 상원의원을 자동으로 겸직하게 돼 있어 부와 권력을 모두 유지하는 데 성공한 것.

경쟁자인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이 감옥에 있는 동안 아브라모비치 주지사의 재산은 133억 달러로 늘어나 러시아 제1의 부자가 됐다. 2005년도 포브스 선정 세계 부호 21위로 올랐다.

구단주로 있는 영국 명문 축구단 첼시를 이끌고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서울에서도 언론과의 접촉을 철저히 피했다. 크렘린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건드리지 않기 위해 눈에 띄는 대외 활동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심지어 주지사이면서도 주로 영국에 머물고 있다.

1억 달러를 들여 첼시를 인수하고 호화 요트와 전용 제트기를 구입하는 등 사치스러운 생활로 구설수에 오르고 있지만 푸틴 대통령의 ‘재벌 손보기’ 태풍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그것이다.

모스크바=김기현 특파원 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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