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大入전략 상품화…실력보다 경험중시

  • 입력 2005년 4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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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에 따른 차별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동등한 기회가 전제돼야 한다.’ 평생 ‘정의가 무엇인가’라는 단일 주제를 화두(話頭)로 삼았던 미국의 철학자 존 롤즈는 그의 유명한 저서 ‘정의론’(1971년)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뉴욕타임스의 밥 허버트 씨는 최근 칼럼을 통해 “우리는 그때로부터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나”라고 개탄했다. 균등한 기회를 전제로 한 미국의 전통적인 ‘실력중심주의(Meritocracy)’가 붕괴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한 일종의 자조였다.

그리고 그런 자조의 저변에는 점차 엘리트 중심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교육 현실이 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 동부의 명문 8개 대학, 즉 아이비리그 신입생들의 10∼15%는 특례 입학(Legacy preference) 허가를 받은 학생들. 아버지 또는 어머니가 같은 학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하버드대의 경우 같은 학교 출신 부모를 둔 지원자들의 합격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3배나 높다. 엘리트 계층 위주로 ‘상품화’돼 가고 있는 대학입시 준비과정 역시 빈곤층을 더욱 소외시키고 있다.

‘아이비 와이즈 LLC’라는 컨설팅회사는 2만3995달러(약 2400만 원)를 받고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입시생들의 방학기간 활동 및 자원봉사 스케줄을 짜준다. 우수한 성적보다는 다방면에서 뛰어나고 독특한 경험을 한 신입생을 요구하는 미 명문대의 ‘입맛’에 맞춰 주기 위한 일종의 ‘프로필 관리’다.

성업 중인 이 업체는 여름방학기간에 멕시코 시골마을에서 이뤄지는 도예 강습 및 스페인어 강의 10주, 세계적으로 이름난 박물관이나 금융기관 실무경험 프로그램을 주선해 준다.

월스트리트저널(21일자)에 따르면 여행사나 사립학교들도 좀 더 ‘튀는’ 경험과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속속 내놓고 있다. 5000∼6000달러를 내면 남미 지역 원주민과 함께 여름을 보내면서 지역 봉사활동을 할 수 있다. 몽골 일대 도보 여행은 6850달러에, 알프스 산맥 경륜 일주는 4795달러에 가능하다.

서부의 유명 사립대학인 포모나대 총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혜택을 누리는 학생들의 실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이를 극복한 학생들에게 입학 우선순위를 주고자 한다”며 특권 계층의 ‘명문대 교육 대물림’을 우려하기도 했다.

최근 하버드대와 예일대가 빈곤층 신입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주는 제도를 신설한 것도 바로 최근의 기회 불균등을 보정하려는 취지라고 할 수 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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