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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9월 19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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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전 주석은 지난해부터 차오스(喬石), 쑹핑(宋平)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 당 원로들로부터 퇴진 압력을 받으면서 은퇴 시기를 저울질해 왔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이 정치국 상무위원에서 물러난 2년 뒤 자신에게 군사위 주석직을 물려주었던 전례 때문에 장 전 주석은 상당한 압박을 받았으며 명예로운 퇴진을 모색해 왔다는 후문이다.
이에 따라 장 전 주석은 7월 말 허베이(河北)성 여름 휴양지인 베이다이허(北戴河)에 머물면서 측근들에게 자신의 거취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베이징(北京) 소식통들은 전했다. 이 자리에서 일부 측근들이 덩샤오핑의 사례를 따라 이번 4중전회에서 은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적극 개진했고 이에 반대한 측근들도 적어도 내년 5중전회에는 은퇴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는 것이다.
건강 문제도 사임 배경이다. 장 전 주석의 가족들에 따르면 만 78세의 고령인 장 전 주석은 1989년부터 심장질환을 앓아 와 더 이상의 활동이 어려웠다는 후문이다.
그의 사임에 대해 권력투쟁의 산물로 보는 관측도 있었으나 이보다는 후 주석과의 합의에 의해 물러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후 주석이 장 주석의 명예로운 퇴진과 사후 안전판을 보장하면서 군권을 평화롭게 넘겨받는 ‘명분과 실리’를 주고받는 길을 선택했다는 분석이다.
장 주석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사태 때 상하이(上海)시 서기로 있으면서 학생 시위를 미연에 방지한 공을 인정받아 덩샤오핑에 의해 전격적으로 총서기 겸 국가주석에 발탁됐다.
정치적 중도파에 경제 개방론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가 보혁 양대 세력을 아우르는 중재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덩샤오핑이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1947년 상하이교통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1955년 모스크바에서 자동차 기술을 배운 기술전문 관료였던 그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을 계승해 중국경제를 발전시켰으나 빈부 및 지역격차 심화라는 성장 우선주의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다.
:中중앙군사위 주석이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군사위원회 주석의 약칭으로 국무원 국가중앙군사위 주석을 겸한다. 인민해방군과 준(準)군사조직인 무장경찰을 통괄하는 군의 최고통수권자이다. 중앙군사위는 15대까지 정원이 11명이었으나 2002년 11월 제16기 1중전회에서 70세 이상의 제3세대 장성들이 퇴진한 뒤 8명으로 운영돼 오다 이번 4중전회에서 11명 체제로 복원됐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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