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T “이라크 미군 정체성 혼란”

  • 입력 2004년 5월 18일 19시 01분


미군 1전차사단은 불과 6주 전만 해도 이라크에서 학교 보수작업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저항세력이 숨긴 무기를 파괴하는 임무에 투입되고 있다.

미군들이 길거리를 지날 때면 어린이들은 손을 흔들어 환영한다. 그러나 저항세력은 끊임없이 박격포와 로켓총유탄(RPG)을 퍼부으며 미군의 목숨을 위협한다.

뉴욕 타임스는 17일 이라크 주둔 미군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회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아파의 심장부 카르발라에서 미군 10여명과 2주간 인터뷰를 갖고 이들의 심정을 전했다.

제니퍼 마리 벤체 상병(20·여)은 “우리는 학교를 재건하고 도로를 고치는 기술자인 동시에, 악당들과 싸우는 군인이다. 대체 우리 임무가 무엇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황 때문에 병사들은 지쳤다. 4월에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병사들의 복무기한은 4개월 연장됐다.

조지 샌도벌 중위(24)는 “만약 미군이 바로 떠난다면 이 나라는 갈가리 찢길 것”이라며 미군 주둔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라크 재건과 치안유지라는 목표로 시작된 미군의 임무는 점점 변질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평가했다.

에릭 일리프 중위(24)는 “어떤 형태의 정부가 탄생할지 모르지만 이라크 방식으로 돼야 한다”며 “이라크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의 포로 학대 파문은 병사들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일리프 중위는 “참전자들에게 ‘아동 학살자’라는 꼬리표가 붙었던 베트남전과 같아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며 “집으로 돌아가면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니얼 리골 병장(23)은 ‘임무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단지 경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그건 유엔의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라이언 스튜어트 상병(26)은 “아이들의 웃는 모습이 위안거리”라고 말했다. 그는 1주일 전 폭탄 파편에 맞아 부상했고, 치료를 받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뉴욕 타임스는 적어도 스튜어트 상병에게는 이제 전쟁이 끝난 셈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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