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주권이양 ‘속빈강정’…美, 알짜권한 장악

  • 입력 2004년 5월 14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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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6월 30일 주권 이양을 통해 이라크에 정치적 결정권을 넘겨주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발표했으나 한편으로는 미국의 입김을 계속 행사하기 위한 ‘조용한 조치’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3일 보도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방송국 면허 부여, 신문 제재, 휴대전화 회사 지휘감독권. 이 권한들은 최근 미국이 임명한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로 넘어갔다. 위원들의 임기는 6월 30일 출범할 과도정부의 임기인 18개월보다 긴 5년.

하이데르 알 아바디 정보통신부 장관은 WSJ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서야 자신의 실권이 이미 위원회로 넘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미국의 작업은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

폴 브리머 미군정최고행정관이 이끄는 미군정은 각 부 장관의 ‘알짜 권한’을 미국이 장악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각종 위원회를 만들었다. 신설 조직은 대부분 앞으로 수년간 범죄 수사권, 정부 계약 체결권, 민간인 소환권 등 중요 권한을 갖게 된다.

각종 권한의 이양을 포고하는 법조항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숨어 있다. 이라크 군경의 지휘권을 3월 이라크 국방부에 넘긴다는 포고문도 한 예. ‘비상’시에는 모든 이라크군의 작전권이 미군에 넘어간다고 규정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국방부가 군 조직, 장교직과 특수군 창설, 군 정책 조율의 권한을 갖지만 전투 참가와 철수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은 미군에 있다. 군의 훈련과 조직을 담당할 안보고문 자리도 미국인으로 채워질 전망.

감찰기구들도 겹겹으로 설치됐다. 미국이 임명하는 감찰본부는 모든 부서에 5년 임기의 부정행위 감찰관을 파견한다. 역시 미군이 영향력을 갖는 회계감사위원회도 정부 계약과 공금사용 기구를 감찰하게 된다.

미국은 선거로 선출되는 정부가 정식 출범하기 전까지는 과도정부에 대한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 일부 이라크 정치인들도 이를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팔루자와 나자프의 전투에서 이라크 경찰이 미군의 지시를 거부한 채 저항세력에 동조하거나 방관하는 자세를 보인 적이 있어 미국의 막후 권한 행사에 이라크 과도정부가 순순히 응할지는 미지수라고 WSJ는 덧붙였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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