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중동 민주화벨트`]이집트-사우디 “개혁 강요말라”

  • 입력 2004년 2월 25일 18시 57분


《중동의 정치·경제 강국인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대중동 구상(the 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중동의 대표적 친미 국가로 분류되는 두 나라의 반대로 미국의 중동 구상은 출발하기도 전에 암초를 만난 셈이 됐다.》

▽친미 동맹국의 반기=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은 24일 하루 일정으로 사우디를 방문했다. 무바라크 대통령과 파드 사우디 국왕, 압둘라 사우디 왕세제는 이날 미국의 ‘대중동 구상’에 맞선 ‘중동 독자개혁 구상’을 공동성명 형식으로 발표했다.

성명은 “외부에서 강요하는 특정 형태의 개혁을 거부한다”며 “아랍 국가들은 아랍인들의 가치와 이익에 맞는 개혁과 근대화, 발전 경로를 따르고 있다”고 천명했다.

이들은 다음달 3, 4일 열리는 아랍연맹 외무장관 회의에 공동 개혁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성명에서 미국의 ‘대중동 구상’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이를 지목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이에 앞서 아무르 무사 아랍연맹 사무총장은 “미국의 구상은 불충분하고 불균형적이며 의심스럽다”고 비난한 바 있다.

미국의 ‘대중동 구상’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말 제안한 것으로 보수 왕정이 많은 중동의 정치 개혁과 자유 증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구상은 6월 정식 공표될 예정이며 미국의 방향에 맞는 개혁을 추진하는 국가에는 지원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을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중동 민주화 벨트’로 불리는 이 중동 민주화 구상은 1975년 당시 서방이 옛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에 자유와 인권신장을 압박하는 근거로 이용했던 헬싱키조약을 원용한 것이다.

이집트와 사우디 정상들은 또 중동의 안정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라크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며 미국의 중동정책을 간접 비난했다.

▽중동의 이상기류=이집트와 사우디의 반미 움직임은 이라크전쟁 이후 지속되고 있다. 이집트는 이라크전쟁에 반대했고 특히 미국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줄곧 비난해 왔다. 사우디 역시 이라크전쟁 때 미군에 기지를 내주지 않으면서 미국의 침공을 규탄했다.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무바라크 대통령의 행보. 그의 사우디 방문은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뤄진 것이다. 그는 지난주에도 아랍에미리트와 오만을 방문하는 등 중동국가 순회를 통해 중동의 단일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미국의 ‘대중동 구상’에 대한 의혹 어린 시선은 당사자인 중동 못지않게 유럽연합(EU)에서도 강하다.

EU는 미국의 구상이 11월 대선을 의식한 것으로 현실화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유럽에 비용 분담을 요구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이 지난해 제시한 중동평화 로드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에 유혈충돌이 그치지 않는 상황에서 중동의 평화와 자유를 추구한다는 구상은 무의미하다는 지적도 있다고 파이낸셜 타임스는 소개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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