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곳]유럽, '외국인 혐오'는 불황 탓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9시 03분


극우파 국민당이 득세한 스위스 총선이 실시된 19일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마하티르 모하마드 말레이시아 총리에게 편지를 보냈다.

“유대인 지배에 관한 귀하의 발언은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마하티르 총리가 16일 “오늘날 유대인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발언한 데 대한 항의 서한이었다.

시라크 대통령이 편지를 보내면서까지 항의한 것은 역설적으로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슬람 이민자가 500만명이나 되는 프랑스에서는 9·11테러 이후 반유대주의가 사회문제가 돼 왔다.

유대인뿐이 아니다. 이슬람 여학생의 머리 스카프(히잡)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연일 언론의 주요기사로 오를 정도로 프랑스인 사이에 ‘이슬람 혐오증’도 깊어지고 있다.

‘이민 전면금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극우파 장마리 르펜은 지난해 대선 1차투표에서 20% 가까운 득표를 했다. 프랑스가 ‘외국인에게 톨레랑스(관용)를 베푸는 나라’라는 얘기는 이제 옛말이다.

사정은 다른 유럽국가도 비슷하다. ‘신나치’ 망령이 되살아난 독일에서도 비슷한 ‘히잡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국에서는 최근 경찰 내 아시아 인종차별이 BBC방송의 잠입르포 결과 드러나기도 했다.

유럽의 외국인 혐오는 이민이 유럽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사회불안의 원인이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합법이든, 불법이든 유럽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민이 증가하는 것이라고 분석한다. 이민 노동력이 인구 노령화와 3D업종 기피풍조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는 것.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은 지난해 조사에서 “유럽연합 15개국에서 300만명의 불법 이민자가 최저임금도 못 받으며 3D업종에 종사하고 있다”면서 “독일은 외국이민 노동자가 없었으면 심각한 경제위기를 맞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 지식인 사회에서는 ‘외국인 혐오는 경기침체와 실업률 증가 책임을 엉뚱한 데 돌리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지만 민심은 반대로 향하는 양상이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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