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삶]에콰도르 민속음악그룹 매니저 김세라씨

  • 입력 2003년 10월 19일 18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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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콰도르 민속그룹 ‘시사이’의 매니저 김세라씨가 목관악기 산포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남보다 키가 작은 장애인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니 인생이 즐겁다”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에콰도르 민속그룹 ‘시사이’의 매니저 김세라씨가 목관악기 산포냐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그는 “남보다 키가 작은 장애인이지만 더 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니 인생이 즐겁다”고 말했다. -권주훈기자
‘키 작은 여자’ 김세라(金世羅·35)씨는 에콰도르 출신 민속음악 그룹 ‘시사이(Sisay)’의 매니저다. ‘시사이’는 일본에서 8장의 음반을 냈고 황실 초청공연을 가졌을 정도로 인기를 얻은 그룹.

10년 경력의 편집 디자이너이던 그가 인생 항로를 바꾼 것은 1997년. 한 극장의 라틴 페스티벌에서 스태프로 활동하던 그를 눈여겨본 시사이의 일본측 관계자가 매니저로 일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그동안 갈고 닦았던 스페인어 실력 덕에 내친 김에 한국 싱가포르 대만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지역 총괄 매니저까지 맡았다.

“처음엔 매니저라기보다 열혈 팬 수준이었어요. 강한 울림과 깊은 소리, 애환을 담은 라틴 음악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죠.”

1998년 5월, 그는 무작정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담당자를 찾아가 시사이의 무료공연을 제안했다. 역 광장에서 거리공연 방식으로 이뤄진 첫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이후 ‘지하철 예술무대’의 스타로 떠오른 시사이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주 소리축제 등에서 단독공연을 열었고, 올해에도 10월 21일 서일대 축제와 22∼24일 부산지하철 서면역에서 ‘열린 음악회’를 갖는다. 내년에는 아시아 5개국 순회공연을 계획 중이다.

그러나 수지상으로는 ‘남는 게 없는 장사’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연 6개월간 한국에 머무는 시사이의 출연료 항공료 체류비 등을 챙겨주면 지갑은 텅 비기 일쑤라는 것.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멤버들을 우리 집에서 먹이고 재울 정도죠. 돈 생각하면 이 일 못해요. 공연을 위해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내 삶의 이유를 찾은 것으로 만족합니다.”

3남매 중 첫째인 그는 가족 중 ‘최단신(1m23)’이다. 하지만 그에게서 ‘그늘’을 찾기는 어렵다. 씩씩하게 악수를 하는 게 그렇고, 시종일관 얼굴에 피어나는 ‘하회탈 미소’가 그렇다.

“장애인은 스스로 갇혀있는 경우가 많고, 저 역시 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이젠 일반인의 ‘낯선 시선’을 이해하면서 그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해요. 서로 눈과 마음이 익숙해지면 인간적인 유대감이 생긴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는 콜롬비아, 페루 등 외국 친구들 앞에서 정열적인 춤을 선보일 정도로 적극적인 성격이다. “키가 조금만 컸으면 이사도라 덩컨을 능가하는 무용수가 됐을 것”이라고 호언하던 김씨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멋진 인생을 살겠다”고 말했다.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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