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총리 4개월만에 퇴진]아바스 가고…戰雲 몰려오고…

  • 입력 2003년 9월 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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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적 평화주의 노선을 표방해온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총리가 취임 4개월 만에 퇴진, 위태롭게 지켜온 중동의 단계적 평화안(로드맵)이 폐기될 위기를 맞았다.

아바스 총리의 퇴진으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권력의 전면에 나섬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 하마스의 궤멸작전에 돌입함으로써 중동평화는 더욱 요원해졌다.

▽아라파트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팔레스타인 자치의회가 조만간 아바스 총리에 대한 불신임을 결의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아바스 총리는 6일 아라파트 수반에게 사표를 제출했으며, 그날로 전격 수리됐다.

그의 사임은 아라파트 수반과의 권력투쟁에서 완패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최대의 치적인 ‘이스라엘과의 휴전’이 지난달 휴지조각이 되면서 예견됐다. 아라파트 수반이 장악하고 있는 파타운동은 물론 하마스와 이슬람지하드 등 과격단체들은 아바스 내각이 이스라엘에 지나치게 비굴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아바스 총리는 최근 과격 무장단체의 잇따른 대이스라엘 테러로 로드맵 이행이 표류하자 이들의 고삐를 쥘 수 있는 치안통제권을 아라파트 수반에게 요구했으나 아라파트 수반은 이를 거절했다. 이에 따라 ‘사퇴서’를 마지막 카드로 내밀었으나 전격 수리된 것.

▽짙어지는 전운=아바스 총리의 후임이 누가 되더라도 팔레스타인 정부 내에서 아라파트 수반과 과격 무장단체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외신들은 관측하고 있다. 아라파트 수반의 영향력 확대는 이스라엘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 이스라엘 총리실은 즉각 “새 내각을 아라파트 수반이 지배한다면 인정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오후 전투기를 동원해 가자시티 하마스 지도부를 공격, 하마스의 창설자이며 정신적 지도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과 행동대원 등 1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이스라엘은 아메드 야신을 겨냥한 공격이 실패한 직후 “모든 하마스 조직원을 제거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마스 역시 ‘강력한 응징’을 다짐해 이스라엘 경찰 및 보안군 등은 버스 정류장 등 예루살렘 곳곳에 대한 순찰과 검문을 강화했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 수반을 추방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어 중동의 전운은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사문화 위기에 빠진 로드맵=중동평화를 중재해온 미국 행정부는 아바스 총리의 사퇴가 로드맵 사문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부심하고 있다.

스콧 매클렐런 미 백악관 대변인은 “팔레스타인은 모든 정파가 결과를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새로운 테러 가능성을 경계하면서 “로드맵 이행을 위해 관련국들과 외교적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이 “흔들리는 중동평화 과정에 추가적인 타격”이라고 평가하는 등 국제사회는 부정적인 전망 일색이다. 로드맵 이행 과정에서의 갈등 완충 세력이 사실상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6일 사퇴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리가 라말라시의 자치의회 건물을 떠나고 있다(왼쪽). 그의 사퇴서를 받아든 야세르 아라파트 자치정부 수반(오른쪽 사진 왼쪽)이 아메드 코레이 자치의회 의장과 심각하게 숙의하고 있다. -라말라=AP AFP 연합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

▼아바스, 오슬로 평화협정 주역-후임, 파야드 재무장관 유력▼

마무드 아바스(68)는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의 주역. 이스라엘과의 분쟁을 해결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면서 4월 초대 총리로 취임했다.

1950년 카타르 망명 시절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핵심 동지들을 규합했으며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과 요르단, 레바논, 튀니지 등에서 망명생활을 함께하면서 PLO 주류 정파인 파타운동을 결성했다. 아라파트 수반의 정치적 동지이자 오른팔로 줄곧 2인자 자리를 지켜왔다.

실용주의자이며 온건파인 그는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주창해 로드맵 이행 적임자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로드맵 이행에 필수적인 하마스 등 무장조직에 대한 통제력과 아라파트 수반과의 권력싸움에서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여왔다.

후임 총리는 아직 불확실하다.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는 아메드 코레이 팔레스타인 자치의회 의장(65)과 살람 파야드 재무장관(50) 정도.

코레이 의장은 아라파트 수반과 가까우며 오슬로 평화협정 때 탁월한 협상력을 인정받은 원로 정치인. 파타운동에 합류하기 전 금융계에 종사했다. 96년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뒤 정치 지도력을 인정받아 의장에 선출됐다.

파야드 장관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의 국제통화기금(IMF) 대표로 재직하다 지난해 6월 재무장관에 임명된 국제금융통. 팔레스타인 재무구조의 투명성을 높인 공로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찬사를 받는 등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코레이 의장은 아라파트 수반의 측근이라는 이유로 이스라엘이 경계하고 있으며, 파야드 장관은 아바스 전 총리와 절친하다는 이유로 아라파트 수반이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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