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주간지 남방주말에 따르면 베이다이허는 국공(國共)내전 말기인 1948년 10월 부상간부 치료를 위한 당 중앙 요양원으로 처음 사용했다. 최고위급 간부로 이곳을 처음 찾은 사람은 혁명원로 주더(朱德)였다.
베이다이허 업무 제도는 1954년부터 시작됐다. 당시 국무원은 이곳을 ‘당중앙 직할기관 간부휴양소’로 개명하고 ‘베이다이허 하계(夏季) 공작위원회’를 설치했다. 문화혁명기(1966∼1976)에는 베이다이허 회의가 열리지 않았다.
이곳의 오욕장(五浴場)이라는 간부전용 목욕탕은 회의장소로도 이용됐다. 간부 대부분이 낮 12시가 되면 시간에 맞춰 목욕탕에 나타났으나 마오쩌둥(毛澤東)은 오후 3, 4시가 돼서야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특히 베이다이허를 좋아해 사망 5년 전인 1992년까지 매년 이곳을 찾았다. 반면 펑더화이(彭德懷) 전 국방부장은 한번도 이곳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없었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매년 가을 당중앙위 전체회의를 앞두고 주요 정책을 결정해온 만큼 국내외의 주목을 받아왔다.
1958년 대만 진먼다오(金門島) 포격사건과 인민공사제도는 마오쩌둥이 이곳에서 결정을 내린 사안이었다. 덩샤오핑은 1989년 85세 생일을 베이다이허에서 보낸 뒤 베이징(北京)으로 돌아가 중앙군사위 주석직을 장쩌민(江澤民)에게 물려주었다.
베이징=황유성특파원 ys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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