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경기 회복조짐에 韓銀 ‘속앓이’

  • 입력 2003년 7월 20일 17시 41분


코멘트
한국은행이 1300억달러(약 156조원)에 이르는 해외자산의 운용 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20일 한은 및 국제금융계에 따르면 한은은 7월 15일 현재 외환보유액 1328억달러 중 국제금융기구 출자금과 금(金)으로 보유한 자산을 제외한 1300억달러 이상을 해외자산으로 굴리고 있다. 국내 보험사들의 해외보유자산이 모두 합쳐야 100억달러에 못 미치는 것을 감안하면 한은은 국제자본시장에서 ‘큰 손’으로 꼽힌다.

한은 해외자산 중 85% 이상이 미국 재무부채권(TB) 등 외화증권이고 나머지는 해외금융기관에 예치해 놓고 있다. 이 때문에 한은 해외자산 운용수익률은 미국 금리와 채권가격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한은은 미국 경기가 하반기에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기존 보유자산의 구성을 놓고 고민을 거듭해 왔다. 그러던 중 1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하반기 경기회복’과 ‘경기가 나빠질 경우 추가 금리인하’라는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했고, 게다가 전통적으로 호흡을 맞춰왔던 FRB와 미국 채권시장 참여자들 사이의 ‘코드’가 깨진 상태라 앞으로 채권가격의 추세를 예측하기가 더더욱 어렵게 됐다. 그동안 FRB 간부들은 10년짜리 미국 국채 장기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자금을 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혔으나 15일 그린스펀 의장이 이를 부인했고 다음 날 다시 전날의 발언을 부인했다.

한은 이재욱(李載旭) 부총재보(국제담당)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경기회복→미국 금리 인상→미국 채권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에 보유 채권을 정리하고 전액 금융기관 예치금으로 바꿔타기를 해야 하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면서 “중앙은행의 1300억달러 자산을 해외 민간금융기관에 예치한다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재보는 “이 때문에 금리가 오르면 가격 하락폭이 커질 장기(長期)채 비중을 줄이고 단기(短期)채 중심으로 자산을 구성해야 하지만, 언제 금리가 상승할지 누가 알겠는가”라고 말했다. 결국 외국금융기관에 대한 예치금의 규모를 다소 늘리고 채권을 단기채권 중심으로 운용하는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한은은 지난해 해외자산 운용 등을 통해 10조원 이상의 운용수익을 얻었다. 이 중 상당액은 금리가 지속적으로 하락함에 따라 보유한 채권의 가격이 올라간 데 따른 평가수익이다. 한은은 이 수익으로 지난해 5조원에 달하는 통화안정증권 지급이자를 내고, 법인세와 법정 적립금을 제외하고도 이익잉여금을 2조5000억원가량 낸 바 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