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헌주/총리자세 잊은 '별난 고이즈미'

  • 입력 2003년 1월 15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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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말에 ‘헨진(變人)’이란 단어가 있다. 한국말로 하자면 ‘별난 사람’이라는 의미다.

일본에는 ‘헨진’이라는 별명을 가진 두 명의 유명인사가 있다.

한 사람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다. 점심식사를 하다 불쑥 말을 꺼내고는 당일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를 ‘해치운’ 그의 행동은 새삼 그의 별명을 떠올리게 한다.

또 한 사람의 ‘헨진’은 지난해 회사원으로 노벨화학상을 수상해 일약 ‘영웅’으로 떠오른 시마즈 제작소의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다. 그는 연구에 몰두하면 머리를 감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삭발을 하곤 했다. ‘보통 사람’과 다른 그를 동료 연구원들은 ‘헨진’이라고 불렀다.

다나카 연구원의 별명은 과학자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독창성’을 추구하다 자연스럽게 얻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예의 노벨상을 받은 다나카 연구원에게 붙여진 ‘헨진’이란 별명은 최고의 찬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헨진’인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 신사참배 강행에서 보여준 면모는 어떤가.

그의 행동에 대해 아사히신문은 “역사적 안목도, 외교적 감각도 없다”고 질타했으며, 마이니치신문도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지적하는 등 일본 언론도 대부분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줬다.

물론 일본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을 영웅으로 떠받드는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는 전범이 합사(合祀)된 야스쿠니 신사는 당연히 참배의 대상이다.

하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아닌 최고지도자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르다. 과거 단죄되었던 침략전쟁을 찬미하고, 식민지배의 가해자란 역사적 사실을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경제와 정치의 ‘낡은 틀’을 깰 것이라는 기대감 속에서 등장했다. 그러나 반발이 불 보듯 뻔한 데도 우경화 분위기에 편승, 전범 앞에 고개를 조아리는 ‘깜짝쇼’를 재연한 것은 이런 기대에 대한 배신이다.

이는 일본인뿐 아니라 한국 중국 등 인접국 국민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다.

조헌주 도쿄특파원 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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