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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28일 15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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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만 교수〓미국의 경제불황이 세계로 번질까봐 세계가 우려하고 있습니다. 미 정부는 경제기초가 튼튼하고 생산성도 높아 곧 회복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더블딥(이중침체) 또는 트리플딥(삼중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옵니다.
▽실러 교수〓1990∼1991년 불황 때 더블딥이 있었습니다. 불황이 끝난 뒤 회복되던 소비자 신뢰도는 다시 하락했고 실업률도 한동안 계속 높아졌습니다. 2001년 불황에도 더블딥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주식시장의 버블(거품)이 꺼지고 있어서 10년 전보다 상황이 훨씬 나쁩니다. 주가폭락으로 소비자들은 자신감을 잃어버린 채 불황을 향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정〓1990년대 후반의 미국 증시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버블이었던 것 같습니다. 2000년 3월 ‘이상 과열’이란 저서에서 20세기 말 미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과대평가돼 있다고 주장하셨죠. 책이 나온 이후 현재까지 주가지수가 30∼70% 폭락했습니다. 혹시 돈을 잃은 투자자들로부터 협박을 받지는 않았나요.(웃음)
▽실러〓책 출간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제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고 주가수준이 높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주가를 과거 10년간 평균수익으로 나누어 계산한 주가수익비율(PER)은 45로 역사상 평균치인 15의 3배 수준이었습니다. 주가 폭락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지금은 21로 낮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높습니다. 버블이 완전히 걷혀 PER가 10 정도가 되려면 주가가 현재보다 50% 더 떨어져야 한다는 의미죠. 이런 일은 과거에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가능합니다.
▽정〓요즘도 TV 등에서 “주식을 싼 값에 팔지 말고 현 상태를 유지하라”는 투자상담사의 조언을 자주 듣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실러〓주가 하락이 시작되면 적어도 분산투자하라는 충고가 나왔어야 했습니다. ‘위험이 높은 주식은 폭락할 수 있으므로 특히 조심하라’고 말해줬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충고는 없었고 “지금 팔면 주가가 치고 올라갈 때 기회를 놓치고 만다”는 이야기뿐입니다. 이런 충고를 많이 듣다보니 투자자들은 주가하락 2년째인 지금도 아마 내주쯤 바닥을 칠 것이라고 생각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가는 절반 또는 4분의 1로 하락했고 분산투자하지 않은 경우는 90% 정도 가치를 잃었을 수도 있습니다.
▽정〓주식시장의 붕괴가 개인소득 감소, 소비지출 위축을 통해 결국 디플레이션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실러〓가능성이 있지만 막을 수도 있습니다. 작년 경기후퇴 때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금리를 상당히 낮춰 놓아 이번에 금리조정을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일본의 경우 너무 주저해 문제가 있었지만 미국은 돈을 많이 찍어내 소비를 촉진시키는 등의 대책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막아야 합니다.
▽정〓미국 증시에 따라 세계 증시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러〓올 3월 이후 주식시장 붕괴는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사실 2000년 3월부터 시작된 것이죠. 한국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최고점인 2000년 초까지 주가가 3배나 올랐더군요. 1999년은 어느 나라에나 주식시장 거품이 극대화됐었습니다. 한국 주가도 올 3월부터 하락했습니다.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 증시 상황이나 회계부정 사건도 잘 압니다. 미국 시장이 좋지 않은 한 여러 나라의 시장도 좋지 않을 것입니다. 상호작용의 충격이 점점 더 커집니다.
▽정〓미국은 역사적으로 투명한 회계시스템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고 이는 미국 경제 번성의 주요 요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엔론 사태 이후 일련의 회계스캔들과 기업부정이 탄로나 미국 경제의 신뢰감이 크게 상처받고 있습니다.
▽실러〓회계부정은 늘 있었지만 요즘 여러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는 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1929년 주가대폭락 이전에도 기업부정이 많았습니다. 특히 버블이 많을 때 기업의 회계부정이 생겨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요즘 한꺼번에 터지는 회계부정 사건은 오히려 주가폭락의 결과로 보입니다. 돈을 잃은 뒤 비난할 대상을 찾는거죠.
▽정〓주가상승기엔 투자자들은 돈을 많이 벌다보니 기업 회계를 살펴보지 않습니다. 버블이 꺼지면서 돈을 잃게 되면 화가 나서 희생양을 찾게 되죠.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의 회계체제를 개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시 정부 고위층 인사들과 대기업들의 인연 때문에 개혁이 제대로 추진될 것인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실러〓스캔들이 터졌을 때 미국 정부가 ‘회계부정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성명을 발표해 세계에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요즘 정부의 대응을 전반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올바른 방향으로 간다고 봅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하비 피트 위원장이 최근 기업 측에 “8월14일까지 회계장부에 문제가 없으면 없다고 서명하라”고 요구한 것도 아주 강력한 대응으로 보입니다. 25일 미 하원에서 가결된 기업개혁법안은 미 회계표준위원회(ASB)가 회계법인을 감독하게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나중입니다. 개혁은 아픔을 수반합니다. 경제가 회복되면 회계문제를 잊기 쉽습니다. 또 부시 대통령의 내부자거래나 회계부정보다 훨씬 중요한 걱정거리는 경제의 버블, 세계적인 경기후퇴입니다. 세계 금융통화정책을 관리하는 ‘세계의 중앙은행’이 없기 때문에 각 나라가 이 문제를 다룰 수밖에 없고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정〓기업의 가치 측정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실러〓1890년대에는 철도 증기선 전기 석유회사 등이 대기업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면 직접 가보면 됐습니다. 그러나 요즘 소프트웨어 회사에 가보면 상태가 어떤지 전혀 알 수 없죠. 엔론의 경우에서 보듯이 파생금융상품을 활용한 복잡한 금융거래, 자회사나 관계회사와의 얽히고설킨 거래를 회계전문가라고 해도 다 파악하기는 불가능한 시대입니다.
▽정〓스톡옵션에대한논란도 뜨거운데요.
▽실러〓기업은 거액을 주고 스타 경영인을 영입하고 경영자는 스톡옵션 때문에 주가에 너무 집착하게 됩니다. 이는 회계부정의 가능성을 높이고 단기실적에만 신경을 쓰게 하는 폐단을 낳습니다. 경영진에게 장기적으로 회사에 기여한 데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게 낫다고 봅니다. 주가보다는 장기적인 회사의 이익에 기여한 점을 평가하자는 것입니다.
▽정〓대부분의 기업들이 스톡옵션을 비용으로 처리하지 않고 각주에만 한 줄 언급하고 있지요.
▽실러〓비용으로 처리해 이익에서 빼는 방식으로 회계처리를 해야 합니다. 각주처리하는 것은 투자자를 속이는 것입니다. 기업은 ‘우리만 비용처리하면 우리 회사 이익만 줄어든다’면서 먼저 하는 것을 꺼립니다. 따라서 모두가 그렇게 하도록 해야 합니다. 코카콜라 같은 몇몇 기업이 비용처리를 선택한 것은 잘한 것입니다.
▽정〓교수께서 쓰신 책이 많이 팔렸죠. 거기서 번 돈은 어디에 투자했습니까.
▽실러〓아내가 다 썼습니다.(웃음)
▽정〓주식도 샀습니까(실러 교수는 미국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고 이머징마켓의 성장형 주식펀드를 통해 간접투자하고 있다).
▽실러〓집을 증축했습니다. 정 교수도 봤잖아요.(웃음)
▽정〓부동산투자를 했군요. 사람들은 그동안 주식이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왔는데 이런 믿음이 줄어들고 그 대신 부동산을 더 안전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실러〓버블 시기와 그 이후에 미국 부동산가격이 굉장히 빨리, 많이 올랐습니다. 2001년 봄 가격이 내린 실리콘밸리 인근 도시를 빼고는 증시붕괴 이후에도 내린 곳이 없습니다. 1987년 증시가 붕괴됐지만 부동산시장은 1989년 정점에 도달한 후 가격이 떨어진 것처럼 시차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부동산시장도 곧 영향을 받을 것으로 봅니다. 부동산 가격이 아직껏 높게 유지되는 데는 ‘9·11테러’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금융센터에 테러공격이 가해지자 사람들은 금융자산보다는 부동산을 선호하게 됐고 여행 다니는 것보다 집에 있기를 더 좋아하게 됐습니다.
▽정〓일본의 경우 증시붕괴 이후 부동산시장도 크게 침체했습니다. 반면 한국에선 외환위기 직후 증시에 비해 부동산이 충격을 덜 받았습니다.
▽실러〓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경우 주가와 단독주택가격이 같은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한국에선 외환위기 전 증시가 활황이었을 때 부동산값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올랐고 주가폭락 때 집값도 함께 떨어졌어요. 미국에서도 이번에 증시와 부동산의 동반침체가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정〓증시는 언제쯤 바닥을 칠까요.
▽실러〓언제나 ‘내일 아니면 모레’라고들 하지요.(웃음) 바닥에 이르는 데 한참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주가가 높기 때문입니다. 바닥에 왔다는 확실한 기술적 지표가 아직 없었습니다.
▽정〓요즘 한국의 투자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실러〓한국증시도 역시 취약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주식이나 부동산에 비해 국채가 좋은 투자수단입니다. 당연히 분산투자를 해야 합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선 안 됩니다.
뉴헤이번(미 코네티컷주)〓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대담자 약력▼
◇로버트 쉴러 교수
△미 MIT 경제학 박사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 교수
△현재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
△경제조사회사와 리스크관리회사 공동설립
△저서 '매크로 마켓'으로 폴 사무엘슨 상 수상(1996)
△저서 '이상 과열'로 커먼펀드상 수상(2000),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2000)
△홈페이지: www.econ.yale.edu/~shiller/
◇정지만 교수
△미 예일대 경제학박사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상명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현 예일대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