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난민 이젠 ‘굶주림과 전쟁’

  • 입력 2002년 1월 22일 17시 53분


아프간 힘겨운 겨울나기
아프간 힘겨운 겨울나기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면서 전쟁은 일단락됐지만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은 여전히 ‘고통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외국으로 탈출한 난민들은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고, 고국에 남은 사람들도 사상 유례 없는 겨울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입 꿰맨 단식〓호주 외국인수용소에 억류된 아프간 난민 180여명은 일주일째 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우드메라 센터에 수용된 아프간 난민들이 15일부터 호주 정부의 비자 발급 거부 등에 항의해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으며, 단식 농성자가 21일 186명으로 늘었다고 전했다.

3개월∼2년째 이 곳에 있는 난민들은 배를 타고 몇 개월간 고생한 끝에 호주로 밀입국하려다 붙잡힌 사람들로 호주 정부에 자신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40도의 찌는 듯한 날씨가 계속되면서 농성 난민들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고 있다. 21일엔 이들 중 40여명이 집단 탈진해 수용소 내 병원으로 실려갔다.

항의 방법도 점차 격화되고 있다. 10대 소년 9명은 최근 수용소가 제공하는 샴푸와 비누, 살균제 등을 삼켰고, 어린이 30여명은 집단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농성자 가운데 85명은 결사투쟁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입술을 바늘로 꿰매는 극단적인 방법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호주 정부의 이들에 대한 입장은 완강하기만 하다.

▽전쟁보다 무서운 겨울 가뭄〓20일 밀과 면화, 포도 생산으로 유명한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주의 조일라호르 마을. 너른 벌판을 새파랗게 뒤덮었어야 할 밀은 싹조차 내밀지 못했다. 지난해 말 애써 씨를 뿌렸지만 밀밭은 온통 황토색이다. 포도 넝쿨도 이젠 이파리 하나 남지 않았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에 따르면 아프간 민중들에게 이번 겨울 가뭄은 미군의 폭격보다 더 무섭다. 마을 옆을 지나는 강물이 마른 지는 이미 오래다. 4년째 계속된 가뭄에 수십m씩 파내려간 우물도 대부분 말라버렸다.

농민들은 생명의 원천인 물이 고갈되면서 또다시 고향을 등지고 있다. 칸다하르주에서만 최근 몇 달 새 수만여명이 물과 일할 곳을 찾아 도시로 떠났다.

국제구호기관들은 지난해 가을 대규모 관정(管井)계획을 세웠지만 아프간 전쟁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국제구호기관인 자비단의 니겔 폰트는 “지난해 11월 132개의 관정을 뚫으려 했으나 전쟁 때문에 못했다”며 “주민들이 물을 찾아 여기저기 유랑하고 있어 이들에게 식수를 제공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종대기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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