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해외거주 피폭자 지원키로…한국인 2200명 혜택

  • 입력 2001년 12월 11일 18시 37분


일본 정부는 한국 북한 등 일본 이외의 지역에 살고 있는 원폭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기금 설립에 착수했다고 11일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후생노동성은 5억엔의 기금을 마련해 빠르면 내년부터 해외 거주 피폭자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거나 일본에 와서 치료를 받는 데 드는 비용 등으로 쓸 계획이다.

이에 따라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에 투하된 원폭 피해를 본 한국인 2200여명, 북한인 900여명 등 모두 4400∼5000여명이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주로 일본인인 일본거주 피폭자들은 ‘피폭자 원호법’에 따라 무료 치료와 매달 3만4000엔의 건강수당을 받고 있으나 해외 거주 피폭자들은 그 대상에서 제외돼 왔다.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한국인 피해자들의 끈질긴 법정 투쟁과 도덕적, 윤리적으로 이 문제를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특히 한국인의 법적 투쟁이 주효했다. 2차 세계대전후 올 10월까지 한국인이 제기한 ‘전후보상소송’은 34건이다. 이중 첫 번째 소송이 72년 3월 피폭자인 손진두(孫振斗)씨가 “한국인에게도 피폭자 수당을 지급하라”는 것으로 1심 재판에서 이겼다.

98년 건강관리수당을 받다가 한국으로 귀국하는 바람에 수당을 받지 못하게 된 곽귀훈(郭貴勳)씨도 소송에서 이겼다. 한국인의 전후보상소송 중 1심에서 승소한 것이 3건(1건은 고법에서 패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두 건의 승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일본이 ‘피폭자 원호법’을 적용하지 않고 새로 기금을 만들기로 한 것은 “외국인에게 이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 국제적 비판을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보인다.

김종대(金鍾大)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장도 “일본 원폭피해자들과 동일한 보상을 받아야 한다는 기본원칙과는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회장·이호경·李鎬景) 관계자도 “해외 거주 원폭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을 해주려면 최소 100억엔 이상이 필요하다”면서 “5억엔의 기금은 생색내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도쿄〓심규선특파원·최호원기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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