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탄저병 극비실험장은 인간 살수없는 ‘불모의 땅’으로

  • 입력 2001년 10월 15일 18시 46분


영국에 탄저병의 공포를 생생하게 증언해 주는 섬이 있다. 스코틀랜드 연안의 작은 섬 그뤼나드가 바로 그곳이다.

1942년 이 섬에서는 극비리에 탄저병 실험이 이루어졌다. 당시 나치의 화학 생물학전을 우려했던 영국 정부는 이 섬에서 양을 상대로 탄저균의 ‘위력’을 실험했다.

이 실험과정을 담은 필름은 50여년이 지난 97년까지 비밀로 분류돼 있을 정도로 실험 결과가 충격적이었다고 영국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양들을 나무 울타리 안에 몰아 넣고 탄저균 포자를 담은 폭탄을 터뜨리자 3일 후부터 양들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탄저균은 단번에 섬을 인간과 가축이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영국 과학자들은 이 섬에 퍼진 탄저균을 말끔히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그만큼 탄저균의 생명력은 강했다.

그뤼나드는 86년 한 영국 회사가 나서 소독 작업을 벌일 때까지 봉쇄됐다. 이 회사는 포름알데히드 280t을 2000t의 바닷물에 희석해 섬 전체에 살포했다. 이에 앞서 섬 토양의 표면을 얇게 깎아내 나온 흙을 폐기 처분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섬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양을 방목했다. 이런 작업은 철저하게 영국 국방부의 감독 아래 이루어졌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90년 4월 마이클 뉴버트 당시 영국 국방차관은 공개적으로 그뤼나드를 방문해 섬이 안전하게 해독됐음을 과시했다. 실험 후 48년이 지나서였다.

그럼에도 일부 고고학자들은 섬의 안전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에든버러 인근의 중세 병원 발굴작업을 총괄했던 브라이언 모팟 박사는 그의 팀이 중세 병원에서 찾아낸 탄저균이 수백년이 넘도록 살아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무리 철저하게 소독했다 하더라고 탄저병의 뿌리가 완전히 뽑혔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나라면 그뤼나드를 방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파리〓박제균특파원>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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