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현지 르포]산-계곡마다 탱크-헬기 잔해 널려

  • 입력 2001년 10월 3일 19시 01분


《아프가니스탄은 거의 대부분의 국토가 해발 1000m가 넘는 고산지역에 위치한 산악국가다.

지난달 25일부터 8일간 헬기와 자동차로 약 800㎞를 이동하며 ‘비운의 땅’ 아프가니스탄현장을 취재했다. 또 한번의 전쟁을 기다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은 이방인의 눈에는 이미 전쟁의 상처로 몸을 가누기도 힘든 ‘빈사(瀕死)의 나라’였다.

어디서나 사방을 둘러봐도 2000∼3000m가 넘는 산이 겹겹이 둘러싼 모습이 보였고 산 정상에는 이미 9월부터 눈이 내려 쌓이기 시작했다.

전쟁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한 외국기자들은

고산병을 막기 위해 현지인들이 가르쳐준 대로 부지런히 마늘과 양파를 씹었지만 고통스러운 두통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의 탈레반 공격이 임박한 가운데 탈레반과 북부동맹군은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곧 시작될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다. 전투는 우즈베키스탄 및 타지키스탄과의 국경 지대에서도 치열해지고 있어 주변국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접경지대인 호자 바우딘. 며칠 전까지 치열한 전투가 계속됐던 이곳은 기자가 도착한 지난달 30일에는 잠시 ‘폭풍 전야의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소강상태에 있었다.

북부동맹군의 한 병사는 비장한 표정으로 “우리 군사 지도자인 아메드 샤 마사드 총사령관이 지난달 9일 바로 이곳에서 탈레반에 의해 암살됐다”며 탈레반에 기필코 복수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북부동맹은 러시아와 주변국인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의 ‘공공연한’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탈레반은 전쟁이 시작되면 북부동맹에 대한 외부의 지원을 차단하기 위해 호자 바우딘과 우즈베키스탄 접경의 마자르 샤리프 지역에서부터 공세를 펼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부동맹측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었다. 북부동맹 관계자는 “이미 마자르 샤리프에서는 북부동맹 소속의 압둘라시드 도스툼 장군이 이끄는 우즈베크인 부대와 탈레반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북부동맹군 기지의 한 가건물에서 10여명의 지휘관들이 모여 작전회의를 하는 모습도 한동안 지켜봤다.

탈레반과 북부동맹군은 상대방 지휘관에 대한 암살도 서슴지 않고 시도한다. 북부동맹의 마사드 총사령관도 외국기자를 가장한 아랍인들에 의해 살해됐다.

이 때문에 북부동맹 병사들은 탈레반에 가담하고 있는 아랍인 등 외국인 용병을 특히 경계하고 있다.

북부동맹의 본거지인 판지시르 계곡은 험준한 산에 둘러싸여 있는, 길이가 120㎞가 넘는 천연의 요새다. 이 계곡 안에는 100여개의 크고 작은 마을이 있는데 북부동맹의 지도부는 안전을 위해 매일같이 거처를 옮기고 있었다.

현지에서 만난 아프간인들은 한결같이 “미국 지상군이 투입되면 무엇보다도 이동과 보급 때문에 고전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자는 북부동맹의 임시수도인 파이자바드에서 판지시르까지의 360㎞ 거리를 자동차로 이동하는데 꼬박 2박3일을 보내야 했다. 산허리를 잘라 만든 좁은 길을 곡예하듯이 조심스럽게 가야 했기 때문에 여간 어려운 행군이 아니었다. 아프간인들은 노새에 짐을 싣고 다람쥐처럼 잽싸게 다녔지만 고지대에 적응이 안된 외국기자들은 모두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연방 머리를 저었다. 적을 공격하기 위해 이렇게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이 무한정 걸리는데다 매복이라도 만나면 살아남는다고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 산악지역에서 효용성이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헬기다. 그러나 고산지대에 흔한 안개와 강풍 앞에서는 헬기도 종종 무용지물이 된다. 아프가니스탄 땅을 직접 밟아보니 이곳이 왜 ‘침략군의 무덤’으로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전쟁만 아니라면 어디를 가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산하는 계속 감탄사를 토해내야 할 아름다운 땅이다.

산과 계곡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부서진 탱크와 헬기의 잔해 등 20여년 동안 계속된 전쟁의 흔적만 없다면.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면 산과 계곡이 다시 피로 물들 것을 생각하니 취재 기간 내내 우울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호자바우딘(아프가니스탄)〓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