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前싱가포르 총리, 회고록서 세계지도자 평가

  • 입력 2001년 9월 5일 00시 54분


인구 300여만명에 불과한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세계 수준의 금융과 물류 중심지로 키워낸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두번째 회고록 ‘일류국가의 길(원제 From Third World to First)’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1999년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첫 번째 회고록 ‘리콴유 자서전(The Singapore Story)’의 속편인 이 책은 싱가포르가 어떻게 부국이 됐으며 깨끗한 정부의 기틀을 마련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또 리 전 총리가 만났던 각국 정상들을 묘사하는 데도 상당한 부분을 할애했다.

리 전 총리는 ‘기로에 선 한국’이라는 별도의 장에서 한국 사회가 민주화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겪었던 혼란을 상세히 다뤘다.

그는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암살되기 닷새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에게 “한국은 번영을 이룰 것이며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보인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날카로운 얼굴과 좁은 콧날을 가진 작고 강단있게 생긴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리 전 총리는 또 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들을 회고하면서 “네 사람의 한국 지도자들은 3대 열강인 중국 러시아 일본에 둘러싸인 한국이 지닌 지정학적인 취약성에 대해 깊이 염려하고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투옥사건을 “오늘의 한국을 이룩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의 명예까지 깎아내렸고 한국인들이 모든 권위에 냉소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든 일”이라고 평가했다.

99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첫 대면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 대해서는 “위기를 겪는 과정에 그늘이 진 사람”이라며 “김 대통령은 여러 차례의 위기를 겪으며 강해진 사람, 더 높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자제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리 전 총리는 중국 리펑(李鵬) 전 총리에 대해서는 “농담 한마디 건네기에도 조심스러운 사람”이라고 말했으며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에 대해선 “지적이고 박식하며 언어적 재능이 뛰어나 상대방과 어떤 문제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평했다.

<김성규기자>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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