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체니에게 신의 은총을"…고어 '아름다운 퇴장'

  • 입력 2001년 1월 7일 19시 11분


미국의 앨 고어 부통령이 6일 자신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긴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확정하는 행사를 의연하고 품위 있게 이끌어 미국민에게 진한 감동을 남겼다. 고어 부통령은 이날 상원의장 자격으로 차기 대통령 당선자를 공식 선언하기 위해 소집된 상하원 합동회의의 사회를 맡았다.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부시 후보가 대통령으로 확정됐다는 발표를 해야 하는 부통령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패자인 자신이 서야 하는 고어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그러나 고어는 가끔 미소까지 지으며 원칙대로 회의를 진행, 뭇 정치인들에게 ‘아름다운 패배’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주별로 선거인단 투표결과가 보고되는 가운데 말썽 많았던 플로리다주 차례가 되자 장내가 술렁였다. 흑인들이 대부분인 민주당 하원의원 13명이 잇달아 발언에 나서 투개표의 잘못을 따졌다.

“미스터 프레지던트. 이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상원의장의 직함은 대통령과 같은 프레지던트(president). 고어 부통령은 이들의 이의가 법에 따라 서면으로 제출됐고 상하원의원 1명씩의 서명이 첨부됐는지를 물었다.

“상원의원의 서명은 없지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흥분한 한 여성 하원의원이 반박하자 고어는 “법은 상원의원의 서명을 요구한다”며 이의를 기각했다. 그는 “상하원 합동회의에선 토론을 할 수 없게 돼 있다”며 다른 의원들의 이의 제기도 만류했다.

13명의 의원들이 화가 나 퇴장한 가운데 고어는 부시의 승리를 선포한 뒤 자신의 기원을 덧붙였다. “차기 대통령과 부통령에게, 그리고 미국에 신의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

의원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가슴 아픈 패배에도 불구하고 승자에게 축복을 기원하면서 의연하고 품위 있게 임무를 다한 뒤 퇴장하는 부통령에게 가슴속에서 우러나는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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