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기고]피터 벡/미대선이 주는 6가지 교훈

  • 입력 2000년 11월 16일 18시 59분


미국 대통령선거는 투표한 지 1주일 이상 지났지만 결과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두 후보의 운도 시시각각 바뀌고 있다. 소설 같은 현실의 마지막 장은 아직 쓰여지지 않은 상태지만 한국은 이번 일에서 몇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첫째, 투표의 소중함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난 조지 W 부시 공화당 후보와 앨 고어 민주당 후보간의 미미한 표차는 유권자의 한표가 얼마나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97년 대선 때 분명한 선택에 직면했었다. 만약 (김대중 대통령이 아닌) 다른 후보가 당선됐더라도 경제위기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햇볕정책’을 추진할 결단을 내렸을까?

둘째, 민주주의의 달성은 중단 없는 정련과 때로 과감한 개혁을 해나가는 과정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가장 위대한 민주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미국의 제도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이번에 논란을 빚고 있는 투표과정과 집계상의 문제들, 소수인종 유권자들이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위협받거나 아예 투표를 금지당했다는 보도 등은 미국에서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음을 시사한다.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는 민주주의 국가로 다른 개발도상국가들의 모델이 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물이 아닌 정책에 근거한 정당 건설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셋째, 선거에 관한 국가적 기준 수립은 부정 시비를 예방할 수 있다. 한국의 정치제도에 관해 가장 많이 제기되는 비판은 권력이 중앙정부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거의 10년이 됐지만 지방정부는 아직도 예산권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정반대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선에서 수천개의 카운티가 모두 독자적인 투표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무선전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시대는 달라졌지만 어떤 투표소에서는 100년도 더 된 투표기구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고 경악했다. 뉴욕의 한 하원의원은 국가 차원의 통일된 투표기준에 관한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넷째, 직선제는 유권자의 뜻을 보다 효과적으로 반영한다. 한국인은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대통령 간선제를 폐지하며 기뻐했다. 미국의 선거인단제도는 이제 효용이 끝났다. 선거인단제도는 직선을 두려워하고 주의 권한을 지키고자 했던 미국 건국 세대의 유물이다. 사슴과 산양이 사람보다 많은 와이오밍처럼 작은 주의 한 표가 캘리포니아처럼 인구가 많은 주의 한 표보다 큰 비중을 갖고 있는 선거인단제도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에선 1987년 이후 당선된 어느 대통령도 과반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정통성이 심각히 의문시되지는 않았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아마 그런 호사를 누리지 못할 것이다. 전체 유권자 득표에서는 졌지만 주별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앞서 당선된다면 취임 전부터 정통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다섯째, 미국 선거는 지역감정과 당파싸움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일깨워주었다. 고어는 동서 양안과 5대호 주변의 주에서 승리했다. 부시는 로키산맥 일대의 주와 남부지역을 휩쓸었다.

이번 선거는 의회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 민주 공화 양당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미국의 분열은,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바른 지도자가 등장하면 문제는 극복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치열한 선거는 대통령 후보가 지도자로서의 자질이 있는지를 충분히 드러내게 한다. 즉 후보들이 자신과 당파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정치인인지, 국익을 앞세우는 큰 정치인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지금까지는 부시도, 고어도 큰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 두 후보는 마치 87년 대선 때 한국의 두 김씨처럼 처신하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대선 결과의 불확실성에 관한 위기의식은 별로 없다. 하지만 현 상황이 몇 주 더 계속된다면 누가 당선되더라도 국민과 의회의 분노를 살 것이고 능률적인 통치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차기 대선 출마 희망자들도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피터 벡(워싱턴 소재 한국경제연구소 국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