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해리포터' 현대적 신화로 문학의 미래 열어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8시 41분


《폭발적인 인기에도, 혹은 그 때문에 ‘해리 포터’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침묵에 가까웠다. 동아일보는 해리포터 시리즈 4편 ‘불의 잔’(전4권)에 대한 진지하고 본격적인 리뷰를 시도한다. 서울의 대형서점에서는 28일부터, 전국적으로는 30일부터 번역판을 구입할 수 있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 / 조앤 K 롤링 지음/ 전4권/ 7500원/ 문학수첩

전세계적인 ‘해리 포터 신드롬’은 한 때의 유행에 불과한가? 아니다. 해리 포터는 우리 시대의 욕망이 폭발하는 가장 뜨거운 텍스트이자 문화 현상인 동시에 사회적 징후다. 이 꼬마 마법사는 낡은 문화의 퇴장과 새로운 문화의 등장을 알리는 패러다임 전환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의 토대를 바꾸고, 비틀스가 음악의 신기원을 만들고, 피카소가 회화의 틀을 다시 재편성했듯, 해리 포터는 순수문학의 낡은 허물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문학의 미래를 연 것이다. 그는 우리의 욕망을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환상적인 유토피아 공간을 펼쳐 보인다. 권선징악이 살아 있는 세계, 도덕과 정의가 죄악과 불의에 대해 승리하는 세계, 절대선이 절대악을 물리치는 세계.

통속적으로 보이지만,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의 세계를 가장 보편적인 문화로 가꾸어 간다. 그것을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은 환상과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교감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해리 포터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현대의 신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책에서 작가가 해리 포터의 어린 시절을 다룬 것과 달리 이번 ‘불의 잔’은 성장기에 진입한 주인공들의 뜨거운 우정과 사랑을 담고 있다. 마침내 어둠의 주인인 볼드모트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도 흥미롭지만, 호그와트와 더불어 또다른 마법 학교인 보바통과 덤스트랭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를 배가시킨다. 해리 포터는 케드릭 디고리, 플뢰르 델라쿠르, 빅터 크룸과 더불어 마법학교 대항전인 트리위저드 시합에서 챔피언으로 선발된다. 네 명의 챔피언들은 용과 인어 그리고 미로를 통과하는 트리위저드 시합을 통해 용기와 미덕, 지혜를 겨룬다.

해리 포터의 빼놓을 수 없는 매력 가운데 하나는 현실 세계와 마법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은 책장을 넘기는 순간, 현실 세계에서 마법의 공간으로 순간 이동을 경험하게 된다.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마법 세계의 매력을 그대로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수직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 현실 세계와 마법 세계는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갈등을 빚어내고 있다. 현실 세계가 빛이라면 마법의 세계는 빛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어둠이다. 빛과 어둠은 서로 뒤얽히면서 환상의 프리즘을 통해 다채로운 광채를 선보인다.

앞으로 조앤 롤링이 풀어야 할 숙제는 수직적인 구조를 수평적인 구조로 바꾸는 일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현실 세계와 마법 세계가 만나는 지점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현실 세계 마법 세계는 과연 어떤 식으로 대면할 것인가? 조앤 롤링은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교류의 방법이 있다. 아서 위즐리처럼 마법사들이 보통사람인 머글들의 문화를 수용하면서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폭력의 방법이 있다. 볼드모트처럼 머글들을 억누르고 지배하면서 마법사의 세상을 빛 속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절의 방법이 있다. 코넬리우스처럼 현재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마법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머글들에게 철저히 감추는 것이다.

현실 세계와 마법 세계는 과연 어떤 식으로 화해할 수 있을 것인가?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이미 그 해답을 밝히고 있다. 해리 포터는 방학이 될 때마다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간다. 해리 포터의 시작과 끝은 언제나 ‘현실’로 모아지는 것이다. 또한 현실은 마법 세계의 모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비등점이기도 하다.

해리 포터가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등교하듯 우리는 해리 포터의 손에 이끌려 마법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지만, 그가 마지못해 이모가 사는 프리벳가로 돌아오는 것처럼 우리 역시 학교와 직장이 있는 현실세계로 되돌아와야 한다.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인 우리의 아이들도 해리 포터와 함께 성장하고 살아갈 것이다. 해리 포터는 커가는 아이들의 내면 속에 깃든 또다른 자아로 자리잡는다. 현실 세계와 마법 세계를 연결하는 통로를 만들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손을 맞잡으면서 수평적인 구조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진정한 힘의 원천은 바로 우리의 아이들이 아닐까?

신현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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