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끝에 일군 '아메리칸 드림' 사회환원…660억원 기부

  • 입력 2000년 10월 5일 23시 31분


지독한 가난의 설움을 이기고 끝내 이뤄낸 ‘아메리칸 드림’. 이제는 베푸는 일만 남은 것일까.

미국의 세계적인 통신회사 메트로미디어의 창업주인 존 클루게(86)는 5일 미국 의회도서관에 6000만달러(약 660억원)를 기부했다.

그동안 대학교와 의회도서관에 수십 차례에 걸쳐 거액을 지원해온 그는 이번에 의회도서관 200년 역사상 개인이 기부한 금액으로는 최대 규모의 기부금을 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이날 보도했다.

의회도서관의 사서인 제임스 빌링튼은 “이 기부금은 ‘존 클루게 센터’를 건립하는 데 사용될 것이며 나머지 돈은 큰 업적을 남긴 학자들에게 매년 100만달러씩 수여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포브스지의 추산에 따르면 클루게씨의 총 재산은 130억달러(약 14조3000억원). 그러나 8세 때 독일에서 부모를 따라 미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세 끼 밥조차 제대로 먹지 못했다.

몇푼 안되는 등록금조차 낼 수 없어 밤과 주말에는 신발과 옷가지, 문구 등을 팔고 다녀야 했다.

클루게씨가 정보통신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정보부대 대위로 일하면서부터. 남보다 앞서 ‘미디어 세상’의 도래를 예견했던지 그는 1946년 1만5000달러에 자그마한 지역방송인 WAGY방송을 매입해 운영했다. 60년에 메트로미디어사를 설립해 오늘날 수많은 방송 통신 매체를 거느린 멀티미디어 제국을 실현했다.

그동안 그는 버지니아 의과대와 플로리다대 등에 거액을 기부했으며 국립전자도서관 설립을 위해 4800만달러를 모금하는 일을 주도하기도 했다. 의회도서관에는 최근 수년에 걸쳐 이미 1300만달러를 기부했다.

‘부인 복’은 없었던 모양인지 세 차례 이혼했다. 91년 파트리샤 클루게와 헤어질 때는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의 위자료와 1만에이커(1224만평)의 땅을 넘겨줘 세간의 화제가 됐다. 슬하에는 세 자녀가 있다.

이날 클루게씨의 기부금 발표식에는 도서관 공동위원회 의장인 테드 스티븐스 상원의원과 위원회 부의장인 빌 토머스 의원 등 워싱턴 정계의 고위인사가 대거 참석,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정작 미담의 주인공인 클루게씨의 모습은 식장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데 언론이 관심을 갖는데 대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한 측근이 전했다.

그는 기부를 결정하면서 도서관측에 “토머스 제퍼슨 전대통령이 의회도서관을 만들면서 귀중한 소장본을 기부했던 그 정신을 잊지 못한다”면서 “더 많은 미국인이 의회도서관에서 문화와 역사의 가치를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소박한 희망을 밝혔다고 한다.

<이종훈기자>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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