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를 달린다]러 제4의 도시 노보시비르스크

입력 2000-09-16 18:57수정 2009-09-2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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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오브강 철교를 지나자 그동안 볼 수 없던 대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시베리아 중심지 노보시비르스크는 인구 150만으로 러시아에서 4번째로 큰 도시. 1893년에 세워진 ‘새로운 시베리아’라는 뜻의 이 도시는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역사를 함께 한다. 시베리아의 개척사가 웅변하듯 타이가(시베리아 침엽수림)를 베어내고 수많은 강과 호수를 헤쳐 TSR 건설에 착수하면서 노보시비르스크도 만들어졌기 때문》

철도박물관의 아나톨리 쿠락신 선임학술연구원은 “TSR 건설은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역사(役事) 중 하나”라고 말했다. 후진국이던 러시아가 시베리아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가장 긴 철도를 건설해 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는 것. 쿠락신 연구원은 “TSR는 건설현장에서 죽어간 수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전체주의 체제가 아니었다면 대규모 노동력의 동원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TSR는 역설적으로 차르(러시아황제) 체제가 남긴 위업인 셈.

노보시비르스크는 학문의 도시이기도 하다. 물리 화학 지질학 등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등 사회과학 분야도 학문전통이 깊은 ‘시베리아학파’를 형성할 정도로 독자적인 위상을 갖고 있다.

시베리아학파는 80년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의 산실이나 다름없다. 이념보다 현실과 실용성을 강조하는 학문적 전통을 가진데다 중앙의 엄격한 사상통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던 것이 노보시비르스크에서 페레스트로이카를 탄생시킨 배경이라는 것.

그러나 20년이 지난 오늘날 시베리아학파는 냉정한 자기비판을 하고 있다. 경제연구소의 마르크 반드만 교수는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은 정확히 내렸지만 그 속도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책도 내지 못해 결과적으로 오늘날 러시아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며 안타까워했다.

시베리아학파는 ‘통합연구’의 전통으로도 유명하다. 이를테면 바이칼호를 연구하면서 지질학뿐만 아니라 생물학 사학 고고학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방식. 바실리 아레센코 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 대외국장은 “TSR를 보완하는 바이칼―아무르철도(BAM)의 건설계획도 통합연구의 결실”이라고 설명했다.

시베리아의 특성에 맞게 인구의 유입이나 노동력의 동원 등에 대한 연구도 세계적 수준. 75년 ‘자원의 효과적 분배연구’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레오니드 칸토로비치 박사는 60년대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경제수학연구소장을 맡았던 대표적인 학자. 반드만 교수는 “칸토로비치 박사가 고안해 낸 ‘TPC접근법(생산력 분배에 대한 일반이론)’은 시베리아의 자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배분할 것인지에 관한 고뇌의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TSR 연구도 활발하다. 북시베리아에 제2 TSR를 건설하는 것과 한국과 일본을 터널로 연결해 일본도 TSR에 연결시킨다는 구상 등은 시베리아 학자들이 처음으로 제기했다.

노보시비르스크에는 노보시비르스크항공기제작소(NAPO) 등 대규모 공업단지도 있다. 수호이전투기를 만들던 NAPO는 소련붕괴 후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알렉산드르 보브르이셰프 사장은 “여객기와 헬기 심지어는 모터보트까지 만들고 있지만 밥그릇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LG와 헬기 및 경비행기 도입 문제로 협상을 벌이는 등 한국 기업과의 접촉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과학센터 아카뎀고로독▼

노보시비르스크 중심가에서 30㎞ 떨어진 과학센터. 이 곳은 아카뎀고로독(학문의 도시)으로 불린다. 옛 소련이 기초과학을 육성하기 위해 50년대에 건설한 대규모 연구단지. 이곳에는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시베리아분소와 노보시비르스크대 등 30여개의 대학 연구소가 모여있다. 취재팀이 탄 차는 예상과는 달리 검문소 하나 거치지 않고 숲에 둘러싸인 아담하고 깨끗한 아카뎀고로독에 들어섰다.

아파트단지와 백화점 영화관 등이 눈길을 끌었다. 아카뎀고로독은 생활기반 시설을 빠짐없이 갖춰 도시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다. 노보시비르스크대 생물학부 박사과정에 있는 유학생 박해조(朴海朝)씨는 “이 곳을 벗어날 필요가 없어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 정부 관계자는 “소련시절에는 외부인의 거주가 금지됐으나 현재는 아무런 규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58년 설립된 핵물리연구소(INP)는 직원만 2900명(연구원 400명)에 이르는 물리학 분야 중 러시아 최대의 연구소. INP는 입자물리학 등의 분야에서 세계최고 수준을 인정받고 있다. 연구소 부소장 겐나디 쿨리파노프 박사는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국가지원이 크게 감소됐다”고 밝혔다. 현재 이 연구소 예산 중 20%만 국고에서 나온다. 대신 외국 기업 연구소와 기술이전이나 공동프로젝트를 통해 운영자금을 마련하고 있다. 연구소측은 한국의 포항공대와 원자력연구소 삼성중공업 등과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97년에는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가, 98년에는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이 이 곳을 방문했다. 이스라엘과 일본 미국이 투자를 추진 중이다. 아카뎀고로독의 차분하고 학구적인 분위기는 시베리아의 천연자원 못지 않게 러시아의 저력을 보여줬다.

<노보시비르스크〓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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