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E메일 감청 논란…"범죄예방" "사생활 침해"

  • 입력 2000년 7월 25일 19시 37분


인터넷 시대의 ‘빅 브라더(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감시자)’가 되려는 것일까. 인터넷 선진국인 미국과 영국 정부가 범죄예방을 이유로 추진하고 있는 E메일 감시가 도마 위에 올랐다.

미 하원의원들은 24일 열린 청문회에서 미 연방수사국(FBI)이 E메일 감시에 사용하는 카니보어(Carnivore) 시스템이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강력하게 비난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카니보어 시스템은 인터넷서비스 회사의 네트워크에 연결해 모든 E메일 내용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

멜빈 와트 하원의원(민주)은 이날 청문회에서 “카니보어 시스템의 사용으로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있다”며 “앞으로 개인생활이 국가에 의해 감시 통제되는 ‘빅브라더리즘’으로 변모될 우려가 있다”고 FBI를 비난했다. 스펜서 배처스(공화) 의원도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개인 정보가 남용된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여야의원들은 일제히 FBI의 E메일 감시를 비난했다.

FBI측은 E메일 감시는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의원들의 비난에 맞섰다. FBI 간부 래리 파킨슨은 “카니보어 시스템은 온라인상의 범죄자를 추적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으며 현재 FBI와 법무부, 의회의 엄격한 감독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케빈 디 그레고리 법무부차관보도 “협박과 신분증 위조, 포르노 등 인터넷 범죄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범법행위의 추적을 위해서는 E메일 감시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법기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치권과 시민단체 사이에서E메일 감시에 대한 비판이 거세어지자 미 정부는 전화통화에 적용되고 있는 사생활보호규정을 E메일 등 전자통신수단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우선 관련법을 개정해 수사기관이 E메일 감시를 할 경우 전화감청과마찬가지로 법무부의 사전승인을 반드시 받도록 할 방침. 그러나 정부의 컴퓨터시스템이 해킹을 당하는 등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는 사전승인 없이 E메일 등을 추적할 수 있도록 유보조항을 둘 방침이다.

영국정부도 최근 E메일과 각종 컴퓨터 통신수단을 아무런 제한 없이 감시할 수 있는 법 제정을 추진해 여론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이 법이 만들어지면 영국정부는 개인과 기업의 E메일 감시뿐만 아니라 통신프로그램의 소스코드 자료도 요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의 단체는 “새 법안은 인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물론 인터넷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정부는 법률 제정을 강행할 방침이어서 정부의 범죄수사권과 사생활보호를 둘러싼 공방은 계속될 전망이다.

<백경학기자>stern10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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