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파병 2개국 美 '두얼굴 외교'

  • 입력 2000년 7월 17일 19시 00분


《미국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인가. 똑같이 전쟁을 치른 베트남과 이라크지만 접근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미국은 베트남과 지난주 무역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곧 베트남 정부와 공동으로 베트남 전쟁 중 발생한 베트남인들의 고엽제 피해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는 근 10년째 완강히 고수하고 있다. 보다못한 미국의 한 민간단체가 이라크 주민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경제제재를 직접 겪는 ‘고통체험’을 자원했다.》

▼베트남전, "과거史 잊자" 교류 급물살▼

미국과 베트남 간의 무역협정이 체결된지 3일만인 16일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에 대한 미국의 사전조사가 시작됐다. 이와 함께 고엽제 피해 미국―베트남 공동조사단이 처음으로 만들어져 곧 본격조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무역협정 체결 전 이미 고엽제 전문가 아널드 슈엑터를 베트남에 파견, 조사지 선정작업 등을 벌여 왔다. 슈엑터는 “파견되기 전 백악관 실무자들과의 협의를 거쳤다”며 “곧 의회와 행정부가 지정한 전문가 조사팀이 파견될 것”이라고 밝혔다.

고엽제 피해 공동조사는 올해 들어 더글러스 피터슨 베트남 주재 미국대사가 거듭 밝힌 뒤 코언 국방장관이 3월13일 베트남을 방문, 정식 제의했다.

그간 고엽제 피해조사는 미국과 베트남이 별도로 여러차례 실시했으나 조사 결과는 크게 달랐다. 베트남은 미군이 62∼71년 사이 4200만ℓ의 고엽제를 살포했으며 자국민 7600만명중 100여만명이 면역결핍 기형아출산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밝혔다.베트남은 고엽제 살포지역인 비엔 호아의 어린이 세포에서 검출된 고엽제 성분 다이옥신(발암성 물질)이 하노이의 어린이보다 50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미국은 이런 현상의 직접 원인이 고엽제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반박해 왔다. 미국은 95년 베트남에서 현지 조사를 벌이다 샘플과 자료를 베트남 당국에 압류당하기도 했다. 이 자료들은 세계보건기구(WHO)에 넘겨졌으나 피해를 입증할 물증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전 참전 군인으로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미국인들에 대해서는 매달 5000달러(약 550만원)씩을 지급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베트남측은 미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배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판 반 카이 베트남 총리는 4월 종전 25주년 기념식에서 “미국 등은 마땅히 책임질 줄 아는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새롭게 고엽제 피해 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은 이에 대한 화답인 셈.

이번에 파견된 슈엑터도 “미국은 베트남의 고엽제 피해자를 돕고자 한다”며 “95년 조사 샘플 등을 WHO에 요구하고 고엽제 피해가 큰 비엔화 공군기지 근처의 토양과 식품들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도 베트남전 참전자들 1만7000여명이 지난해 5월 다우케미컬 등 미국 고엽제 제조사들을 상대로 5조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 미국과 베트남의 고엽제 조사 결과와 배상 내용은 국내의 고엽제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관심을 끌고 있다.

<권기태기자·하노이 연합뉴스>kkt@donga.com

▼걸프전, 이라크 경제빗장 10년 '신음'▼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유엔이 이라크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한 지 근 10년. 이라크 주민들은 식량과 의약품 등이 부족해 말못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경제제재 이후 지난달 말까지 어린이와 노약자 등 136만명이 병마와 굶주림으로 숨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은 서방의 무관심과 이라크 정부의 과장된 선전공세에 가려져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의 한 민간단체인 ‘황무지의 목소리’ 회원 6명은 이라크 주민들이 처한 실상을 알리기 위해 고통체험을 자원했다.

이들은 15일 경제난이 가장 심각한 남부도시 바스라로 떠났다. 바스라는 이라크 제2의 도시로 91년 걸프전 때 연합군의 집중 포화를 받아 폐허로 변한 곳으로 지금도 가끔 미국과 영국군의 공습을 받는 지역. 이들은 바스라에서 두달간 주민들과 똑같이 같은 양의 배급 식량에다 현지 주민들이 겪고 있는 전력난, 그리고 열악한 상수와 파괴된 하수 구조 속에서 생활하게 된다. 또 일주일에 한번씩 자신들이 겪은 체험 내용을 소상하게 웹사이트(www.nonviolence.org/vitw)에 띄워 지구촌 네티즌들에게 알릴 계획이다.

황무지의 목소리의 설립자인 케시 켈리(47·시카고)는 “미국 시민들과 세계인들에게 그 곳의 실상이 어떤지, 그리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이라크 주민들의 고통이 변함없이 그대로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켈리는 90년 12월 수백명의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연합군의 이라크 공격을 막기 위해 이라크 사막에서 캠프생활을 한 이래로 이라크를 13회 방문했다. 96년에는 시카고에 본부를 둔 황무지의 목소리를 창립했다. 이후 이 단체는 유엔의 대이라크 경제제재를 풀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그동안 의약품 등 100만달러 이상을 이라크에 지원해왔다.

<윤양섭기자>laila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