泰-印尼-필리핀 달러유출 비상…한국은 안전한가?

  • 입력 2000년 5월 18일 18시 33분


97년말 한국과 함께 외환위기를 겪었던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최근 들어 외국인 투자자금이 대거 이탈, 해당국의 통화가치와 주가가 급락하는 등 금융불안이 재연되고 있다.

이번 동남아 금융위기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처럼 한국에 전파될 가능성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과 동남아는 경제의 기초여건이 다르고 경제 규모나 경기회복 속도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곤란하지만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자금유출 비상 걸린 동남아〓태국의 바트화와 인도네시아의 루피아화, 필리핀의 페소화 등의 통화가치는 올들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하락했다.

달러화에 대한 루피아화의 환율은 달러당 8432루피아(17일 종가 기준)로 작년 9월 이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 IMF체제 졸업을 눈앞에 둔 바트화도 미국 금리인상과 이에 따른 외국인 자금의 유출로 인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식시장의 상당부분을 떠받치고 있는 외국인들이 보유주식을 팔아치우거나 관망세를 보이면서 주가도 곤두박질치는 모습. 연초대비 주가 하락률은 △태국 32% △필리핀 27% △인도네시아 20%를 나타냈다.

LG투자증권 투자전략팀 임송학(林松鶴)차장은 “아시아 국가 중에도 가장 취약한 곳에서 투자자들의 심리가 많이 반영되는 환율과 주가가 교란조짐을 보이는 것이 불길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통화가치 하락은 미국 경제의 장기간의 호황에 따른 전세계적 현상이며 동남아에서 빠져나가는 돈도 주로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성 자본인 만큼 최근 움직임을 97년말과 같은 구조적 징후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관계자는 “태국의 경우 공업용 전력수요가 계속 늘고 있고 부실채권 규모도 완만하나마 줄어드는 추세”라며 아직은 ‘일시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동남아 불안이 한국으로 번질까〓공교롭게도 외견상으로는 한국 금융시장도 동남아 국가와 닮은 꼴. 구조조정이 차질을 빚으면서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의 순유입액이 부쩍 줄어 주가가 떨어졌고 원화 가치는 하락세로 돌아섰으며 한국 채권의 가산금리는 올라갔다.

한 외국계 증권사 간부는 “미국 유럽의 투자자본들은 IMF 체제를 경험한 국가들을 ‘한묶음’으로 분류하면서 위기를 완전 극복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의심을 거두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동남아발 위기가 현실화될 경우 외국인 자금의 동요로 인해 우리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것. 이달 들어 외국계 증권사의 서울지점에는 한국사정을 궁금해하는 외국인투자자들의 문의가 부쩍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법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통해 금융부실을 조속히 정리, 국가신인도를 높이는 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 재정경제부 고위관계자는 “현재의 동남아 상황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외환시장 동향에 좀더 신경을 쓰면서 금융 및 기업개혁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박원재·이철용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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