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정부, 일사부재리원칙 폐지 법개정 추진

  • 입력 2000년 5월 16일 19시 12분


영국 노동당 정부가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을 폐지하기 위해 법개정을 추진중이다. 유전자 감식 등 새로운 기술 발달로 확실한 범행 증거들이 뒤늦게 나타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지는 15일 일사부재리 원칙 폐지는 지난해부터 논란이 돼 왔으며 최근 새로운 계기가 발생해 논란이 더욱 뜨거워졌다고 보도했다.

1993년 발생한 흑인 소년 스티븐 로런스 살인 사건의 용의자 3명이 당시 무죄 방면됐으나 이들 중 2명의 유전자 정보가 지난달 한 가옥의 정원에서 발견된 칼에서 나타나 상황이 변했다는 것. 윌리엄 맥퍼슨 하원의원(보수당)은 “확증이 새롭게 나타난 사건에 한해서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폐지하자”며 노동당측에 법개정을 요구했다.

윌리엄 헤이그 보수당 당수는 당 차원에서 이를 추진하고 있다며 18일 영국 경찰 연합 모임에서 “살인 성폭행 거액절도 등 중범에 대해서는 확증이 뒤늦게 나타나면 다시 기소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당의 입장을 밝히겠다고 예고했다.노동당 소속인 잭 스트로 내무장관도 처음에는 보수당의 주장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나 차츰 여론에 밀려 잉글랜드 및 웨일스 사법위원회에 검토 후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현재 배심원을 위협하거나 뇌물로 회유한 사실이 드러나면 재판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고등법원 판사를 지낸 마이클 데이비스경은 “일사부재리 원칙 폐지는 매우 위험한 문을 여는 것”이라며 “경찰과 검찰이 증거가 충분치 않으면서도 다시 한번 재판할 기회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기소를 감행하는 등 인권유린 등 부정적 사태들이 일어날 것을”이라고 우려했다.

<권기태기자>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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