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총기반대" 100만 어머니 행진 70여개 도시서 열려

  • 입력 2000년 5월 15일 19시 48분


총기사용과 소유를 강력하게 규제하라고 요구하는 ‘100만 어머니 행진’이 14일 미국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미 전역 70여개 도시에서 열렸다.

미국의 어머니날인 이날 워싱턴에서는 어린이와 남편의 손을 잡고 나온 수만명의 어머니들이 국회의사당 앞의 ‘내셔널 몰(National Mall)’을 가득 메우고 어린이들이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의회는 좀 더 강력한 총기규제 조치를 취하라고 요구했다.

이날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집회는 총기규제 관련 집회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주최측은 참석자가 50만명에 이른다고 주장했으나 공식 집계는 되지 않았다.

어머니들은 하루 평균 12명의 어린이를 포함해 80명이 넘는 인명이 각종 총기사고로 희생되고 있는데도 의회가 전국총기협회(NRA)의 로비에 휘말려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고비난했다. TV토크쇼 사회자인 로지 오도넬은 “총기협회와 이들이 벌이는 책략은 이젠 지겹다”면서 “협회는 피묻은 돈으로 의회의 표를 사고 있다”고 공격했다.

지난해 4월 컬럼바인고교의 총기난사 사건으로 자식을 잃은 돈 애나는 “우리가 지켜보고 있으니 정치인들은 조심하라”고 경고하고 “요람을 흔들던 어머니들의 손이 이제 세상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절규했다.

참석자들은 올 11월 실시되는 연방 상하의원 선거에서는 총기규제에 찬성하는 후보를 지지할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이날 오전 백악관에서 1000여명의 어머니들이 참석해 열린 행사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는 이같은 어머니들의 요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총기규제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한다’는 총기옹호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헌법에 여행의 자유가 명시돼 있지만 우리가 자동차면허 및 등록제를 실시하고 속도제한 및 안전벨트 착용 같은 제한을 두는 것을 위헌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반박했다.

힐러리는 “어머니들이 선물받고 싶어하는 것은 꽃이나 보석, 예쁜 카드와 근사한 식사가 아니라 의회가 우리 어린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고 거들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해 컬럼바인고교의 총기사고 후 오발사고를 막기 위해 새로 제조하는 권총은 의무적으로 안전 자물쇠로 채우는 것 등을 골자로 한 총기규제법안을 의회에 냈으나 의회는 9개월째 제대로 심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지는 이날 사설에서 “의원들은 선거운동에 윤활유 역할을 하는 총기협회의 강한 로비에 도전할 용기가 없다”고 질타하고 “희생자가 양산된 뒤에야 의회가 조치를 취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CNN방송과 갤럽 등이 최근 미국 내 성인 1003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6%는 권총보유 등록제를, 79%는 총기에 안전자물쇠 부착을 각각 찬성하는 것으로 나이 때문에 어머니들의 이번 집회는 미국 사회 안에서 형성된 다수의 새로운 정치적 목소리로서 의회에 상당한 압력이 될 전망이다.났다.한편 이들과 정반대로 총기규제에 반대하는 어머니 등 수백명은 이날 워싱턴 기념비 부근에서 ‘수정헌법 2조의 자매들’이라는 단체 주도로 집회를 갖고 “호신용으로서의 총기보유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총기규제 반대파들은 자체행사가 끝난 뒤 ‘100만 어머니 행진’ 집회가 열린 곳으로 가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어머니들과 서로 야유를 하기도 했으나 별 충돌은 없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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