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요원 엘리안 납치" 비난 고조…쿠바계 주민 격렬시위

  • 입력 2000년 4월 23일 20시 00분


미국 정부가 22일 공권력을 동원해 쿠바 난민소년 엘리안 곤살레스를 강제로 아버지와 만나도록 함에 따라 5개월을 끌어온 엘리안 처리 문제는 시기만을 남겨두었을 뿐 본국 송환 쪽으로 매듭지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미 정부의 이날 조치가 불가피한 법집행이었다 하더라도 자동소총 등으로 무장한 이민귀화국(INS)요원들이 최루가스를 터뜨리며 문을 부수고 들어가 벽장속에서 잠자고 있던 여섯 살짜리 소년을 강제 납치하다시피 한 처사에 대해 비난 여론이 집중되면서 벌써부터 적잖은 후유증을 낳고 있다.

당장 쿠바계 주민들이 격렬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고 공화당도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정치 공세를 펴고 있기 때문이다.

마이애미의 쿠바계 주민들은 이날 밤늦게까지 항의 시위를 벌인 데 이어 25일 대규모 시위와 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대부분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의 학정을 피해 미국으로 탈출한 이들은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쿠바를 탈출한 엘리안을 미국 정부가 공권력을 동원해 사지(死地)로 돌려보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공화당 인사들도 일제히 정부 공격에 나섰다. 공화당의 톰 딜레이 하원 원내총무는 “정치활동을 해오며 정부의 조치가 이렇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던 적은 없었다”며 “연방 요원이 민가에 들어가 총기를 들이대고 어린 소년을 낚아챈 것은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규탄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인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는 물론 그의 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는 “이 문제는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해결할 수 있었다”며 “정부의 조치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정부의 이번 조치에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앨 고어 부통령은 “엘리안 문제는 가정법원에서 가족끼리 해결하는 게 옳다”며 공권력 투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혀 민주당 측에선 적전 분열의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미국 정부의 강제구인 조치에도 불구하고 엘리안은 당분간 미국에 체류하게 된다. 엘리안의 친척이 제기한 그의 미국 망명신청 건과 관련해 애틀랜타주 제11 순회 항소법원이 청문회가 열리는 다음달 11일까지 누구도 엘리안을 국외로 내보낼 수 없다고 최근 판결했기 때문.

엘리안 송환 문제로 그동안 갈등을 빚어온 미국과 쿠바의 갈등 관계는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쿠바 정부는 이날 국민이 지나치게 환호하는 모습이 미국 언론에 보도되면 엘리안의 송환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며 자제를 요구했다.

그러나 카스트로는 “미 법원이 엘리안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해선 안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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