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호황기 비교]주가 고공비행-소비증가 현상 비슷

  • 입력 2000년 2월 14일 19시 54분


《최근 ‘107개월 연속성장’ 기록을 세운 미국 경제는 거품인가, 실적인가. 미국경제에 대한 거품 경계론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요즘 미국과 일본에서는 1980년대 일본의 거품경제기와 1990년대 미국 경제를 비교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한때 놀라운 성장을 기록했다가 장기침체로 접어든 일본과 최장기 호황에 접어든 미국은 어떤 점에서 닮았고 무엇이 다른가.》

▽닮은 점〓미국 다우존스지수는 95년경부터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다우존스의 상승폭이나 상승속도는 일본의 닛케이주가가 84년부터 가파르게 오른 것과 거의 일치한다.

주가급등에 따라 가계 소비가 급증한 것도 공통점. 작년 미국인들은 스톡옵션 등으로 보유한 주식의 가격이 크게 올라 개인 소비지출이 전년보다 5.3%나 늘어났다.

요즘 미국에서는 최고급 일본주를 차갑게 마시는 ‘콜드 사케’가 크게 유행이다. 한병에 100달러가 넘는데도 판매액이 작년의 두배로 늘어났다. 이는 80년대 일본의 ‘보졸레누보(첫수확되는 포도로 담근 술) 붐’과 똑같은 현상이다.

미국은 국내생산이 소비증가를 따라가지 못해 수입이 늘어나면서 경상적자가 확대됐다. 가계 저축률도 대공황 때를 빼면 사상최저인 1%대로 떨어졌고 대출금 의존도는 높아지고 있다.

▽다른 점〓일본 거품기에는 주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지만 지금 미국에선 부동산 가격상승은 별로 볼 수 없다.

일본 기업들은 당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자 이를 담보로 대출금을 늘려 설비투자와 고용확대에 몰두했다. 이것은 90년대 설비 고용 부채의 세가지 과잉을 낳았다.

반면 미국 기업들은 대출금을 늘리거나 증자하는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수익이 확대되면 자사주를 소각해 주가를 올리려 한다. 대형 기업인수합병(M&A)도 대부분 보유주식을 교환하는 형태로 이뤄지기 때문에 대출금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현재 미국은 이미 금융자유화를 끝냈다는 것도 80년대 일본과 다른 점이다. 금융자유화가 완료되기 전 거품붕괴를 맞았던 일본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불량채권 때문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았다. 반면 미국 금융기관들은 자기자본비율을 높이는 등 자유화시대에 맞게 리스크관리체제를 만들어 주가가 폭락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거품붕괴의 결과는 파멸인가〓이런 차이점 때문에 미국쪽에서는 주가급락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미국 경제분석가들은 “주가안정은 과잉소비를 억제해 저축률을 높이고 경상수지를 개선하기 때문에 오히려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일본 정부는 거품붕괴후 금융 대책을 적절하게 마련하지 못해 장기침체로 접어들었지만 미국은 그런 정책실패는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요즘처럼 기업이나 개인의 증시의존도가 높을 경우 주가급락으로 인한 손실이 사회전체에 폭넓게 파급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1998년 신흥시장 경제위기처럼 주가가 급락해 투자가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면 엄청난 시장혼란이 찾아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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