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토로라 성장신화 주역 피셔-토퍼 '새옹지마'

  • 입력 2000년 1월 16일 20시 04분


조지 피셔 이스트먼 코닥사 회장(60)과 모튼 토퍼 델컴퓨터 고문(64)의 인생유전(人生流轉)이 미국 재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수년 전까지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두 사람은 디지털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될 무렵 다른 길을 선택했다. 이제 그 차이는 명확해졌다. 피셔가 7년간 코닥사에서 일하며 벌어들인 돈은 740만달러(약 85억원). 그러나 토퍼는 5년간 델컴퓨터 주식가격이 급상승하면서 스톡옵션 등으로 무려 6940만달러(약 795억원)를 벌어들였다. 미 경제전문 격주간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이 격차는 성장률이 둔화한 대기업과 디지털 혁명에 힘입어 급성장한 신생 기업간 성장률의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했다.

코닥회장과 토퍼고문은 모토로라 출신. 두 사람은 모토로라를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키워낸 주역으로 사내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10여년간 엎치락 뒤치락 승진 경쟁을 벌이던 이들은 90년대 중반 각기 새로운 회사로 옮겼다.

피셔와 토퍼는 각각 76년과 71년에 모토로라에 입사했다. 처음에는 먼저 입사한 토퍼가 당연히 직위도 높았지만 피셔는 뛰어난 경영수완을 발휘해 토퍼를 추월, 88년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에 올랐고 90년에는 회장에 등극했다. 피셔의 완승이었다.

이어 피셔는 93년 세계적인 필림 및 카메라 제조업체인 코닥사의 회장으로 영전한다. 그는 당시 루 거스너 IBM사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사 회장과 나란히 어깨를 견줄 만큼의 위대한 경영인으로 거론됐다.

피셔와 경쟁에서 탈락한 토퍼는 94년 모토로라 부사장직을 그만 두고 당시로서는 신생기업인 델컴퓨터로 자리를 옮겨 새파랗게 젊은 마이클 델 회장(35) 밑에서 부회장을 맡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피셔의 승리로 보였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지지 시작했다. 코닥사는 97년부터 일본 후지필름의 저가판매 정책에 밀려 고전을 하다 지난해 1·4분기에는 미국 필름시장 점유율이 5%나 하락하는 낭패를 보았다. 피셔는 부진한 경영상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계약기간이 끝나는 내년 초 회장직에서 불명예 퇴진할 처지에 놓였다.

디지털 시대는 델컴퓨터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지난해 컴팩을 젖히고 미국 최대의 PC제조업체로 부상한 것이다. 지난해 부사장직을 사임하고 현재 고문을 맡고 있는 토퍼는 내년 초 명예롭게 퇴직한다. 토퍼의 역전승이라고나 할까.

<김태윤기자>terre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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