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 석방 결정…찬반론 팽팽

  • 입력 2000년 1월 12일 20시 03분


11일 영국 정부가 런던 교외에서 가택연금 신세로 지내던 칠레의 전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를 석방하기로 함에 따라 국제사회에 큰 파문이 일고 있다.

피노체트는 빠르면 수주내에 귀국할 수 있게 됐지만 인권단체들의 반발 등 후유증이 작지 않을 전망이다.

잭 스트로 영국 내무장관은 당뇨와 뇌졸중으로 극히 나빠진 피노체트의 건강을 고려한 인도적 판단에 따라 석방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일부 영국 언론은 피노체트가 곧 사망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병세가 악화됐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영국 내무부는 3년전 나치 독일 전범인 독일인 시즈만 세라피노비치(85)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자 재판을 받기 어렵다며 기소를 중지한 바 있다.

영국이 남미의 군사 경제적 우방인 칠레와 피노체트의 송환을 요구해온 스페인 사이에서 법적 외교적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한 고육책으로 석방결정을 내렸다는 견해도 있다.

스트로장관이 성명에서 “피노체트의 스페인 송환절차를 중단한다”고 못박은 점은 특히 주목할 대목. BBC방송과 로이터통신은 12일 내무부가 2주일간 관련국 정부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적 절차를 거쳐 피노체트의 칠레행을 허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최종 결정이 내려지면 피노체트는 그로부터 7일 뒤 귀국할 수 있다.

칠레 정부는 11일 “영국 정부가 미묘한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한 데 대해 감사한다”며 영국의 조치를 환영했다. 피노체트의 지지자 모임인 ‘피노체트 재단’은 “칠레 국민은 주권과 자존심을 되찾았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해외 망명 칠레인들의 단체인 ‘민주칠레’는 “피노체트가 사법의 정의로부터 빠져나갈 가능성이 생겨 참담한 심정”이라며 영국정부를 비난했다.

피노체트가 영국에서 체포되는 계기를 만든 스페인 정부는 12일 “영국 정부의 최종 결정을 존중할 것”이라는 성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피노체트의 소환을 요구해온 스페인 검사들은 “영국 정부의 결정은 정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며 비난했다.

피노체트는 1973∼90년 칠레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살인 고문 등 반인륜 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스페인 법원에 의해 체포영장이 발부돼 1998년 10월 영국에서 체포됐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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