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국제영화제 결산]사실주의 아시아영화 잔치

  • 입력 1999년 9월 12일 18시 31분


올해의 베니스는 현실에서 건져올린 생생한 소재로 사실주의적인 영상을 선보인 아시아 감독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세기말의 정서를 반영하듯 올해는 성적 충동을 다양하게 변주한 영화들이 대거 출품됐다.

그러나 세계 최고(最古)의 연륜을 지닌 베니스영화제는 더이상 새로운 기법과 정신을 기대할 수 없는 세계영화계에 ‘시네마 베리테(사실주의적 영화)’만이 새로운 모범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 심사위원대상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2편의 중국영화와 1편의 이란영화는 그런 면에서 닮은 점이 많다.

최우수작품상을 탄 장이모 감독의 ‘한 명도 안돼’는 중국 오지의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실화를 영화화했다.

임시로 23명의 초등학생을 맡게 된 13살 소녀가 도시로 떠난 한 아이를 다시 학교로 데려오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펼친다. 주인공 소녀는 같은 감독의 ‘귀주이야기’(92년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의 주인공 귀주처럼 적극적인 중국인상을 대표한다.

최우수 작품상을 탄 장이모 감독이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서구를 겨냥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제도권 내 감독’이라면 최우수감독상을 탄 장위안 감독은 중국에 들어가지 못한 채 타국에서 떠돌고 있는 ‘제도권 밖 감독’.

중국 6세대 감독의 대표라 할 그는 중국에선 불법인 독립영화를 통해 중국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왔다. 이번에 수상한 ‘17년’은 풍비박산난 한 가족이 오랜 세월후 화해를 모색하는 내용.

늘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무색하게 만들어왔던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올해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에서도 이란 접경지역 쿠르드 마을을 배경으로 삶의 소중함을 이야기한다.

한편 베니스영화제 수상의 여세를 몰아 국내에서의 재평가를 노렸던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은 베니스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영화였다는 점에 위안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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